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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이 일찍 일어나야 하는 이유

해보니까 이게 또 되네요..

by 워킹맘

한동안 브런치와 격조하였다. 이유를 찾자면 수백 가지이겠지만 일단 너무 바빴다. 작년 중반부터 시작해서 본격적으로 일이 많아지더니 이제는 눈앞에 좀비들처럼 일이 처리하면 또 생기고 처리하면 또 생기면서 피로가 누적되었다. 거기다 틈틈이 아이들도 챙긴다고 이것저것 하다 보니 내가 개인적으로 쓸 수 있는 시간이 극도로 줄어들었다. 눈을 뜨고 나면 어디론가 훌쩍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날도 여러 날 있었다.


평소에도 가끔 인스타그램 릴스를 보는데, 거기에서 하루를 오전 5시쯤 시작하는 어느 워킹맘의 모닝 루틴을 보게 되었다. 아들이 넷인 미국 엄마는 새벽 5시쯤 일어나 책을 읽고, 운동을 하고, 샤워를 하고 메이크업까지 마치고 아이들을 깨워 홈스쿨링을 시켰다. 그 엄마는 집에서 일하는 엄마였지만 아들 넷을 키우는 것 자체가(심지에 넷 중 하나는 아직도 낮잠을 자는 유아였다) 풀타임 근무에 견줄만하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에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나서 나의 생활을 살펴보니 약간의 공사(?)가 필요해 보였다.


나는 오전 7시 반에 일어나서 급하게 출근하고, 저녁 8시쯤 집에 와서 저녁식사를 하고 아이들을 재운뒤 남은 일을 하다가 12시 언저리에 자는 일이 잦았는데, 일을 하다 보면 1-2시까지 넘는 날도 종종 있었다. 그러다 보니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가 어려웠고, 아이들 셋(또는 둘, 막내는 기상시간이 큰애들보다 다소 늦은 편이다)이 잠에 취한 엄마를 침대에서 끌어내리다시피 하는 날들도 있었다. 게다가 아이들은 잠들 때 엄마가 같이 자지 않더라도 본인들이 잠들 때까지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좋아했는데, 몇 번 끌려가서 토닥토닥해준다는 게 아이들보다 먼저 잠들 때도 있었고, 그런 날은 밀려버린 일로 인해 다음날 말도 안 되게 심한 죄책감을 느꼈다.


워킹맘의 일정이 한없이 꼬여버리면, 아주 이상하고 기분 나쁜 느낌이 드는데 그 감정의 본질은 자괴감이다. 일하려고 했는데 잠들어 버리면 '아, 나는 이거 하나 제대로 못하는 걸까', 아이들 준비물을 못 챙기면 '나는 나쁜 엄마야', 회사일이 밀려버리면 '나는 능력 없는 직원이야'라는 죄책감이 뼛속 깊이 파고든다. 이 경우 나락으로 떨어지는 나의 자존감을 다시 끌어올리는 것 또한 고스란히 내 몫이다. 이렇게 전쟁 같은 일상을 계속 끌고 갈 수는 없을 것 같서, 조금은 어설프지만 인스타그램 릴스 속의 엄마를 따라 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계획인즉슨, 5시에 일어나서 나만의 시간을 좀 갖고(밀린 일이 있으면 좀 하고), 운동을 좀 한 후 아이들을 준비시키는 것이었다.


일단 스스로 5시에 일어나는 일은 매우 힘들었다. 알람은 맞추어 놓았지만 관성(?)에 의해 순식간에 끄고 다시 잠들어버리기 때문이다. 다행히 6시쯤 일어나는 남편이 몇 번 일찍 일어나 깨워주면서 도움을 주었다. 어쩌다 일어나서 운동을 하려고 하니 큰 따님 둘째 따님이 따라 나오겠다고 했다. 혼자서 가볍고 상쾌하게 운동을 하고 싶었지만, 언제나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에 고파하는 우리 딸들은 6시에 엄마와 함께 운동장을 달리겠다고 했다. 그리고 실제로 지금까지 3번 정도 따라 나와서 달리기도 하고, 들어오는 길에 엄마와 수다도 떨고 했다. 주중에 며칠 달린 게 기분이 좋았는지 유독 일찍 일어나는 둘째는 주말에도 아침 일찍 아빠를 깨워 달리기도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운동을 하고, 샤워를 하면 일단 기분이 너무 좋아진다. 예전에 성공하는 사람들의 습관이 '침대정리'와 '아침 샤워'라는 말을 듣고 콧방귀를 뀐 적이 있었는데, 침대 정리는 아직 아이들이 자고 있어서 못하지만 아침 샤워는 확실히 하루를 상쾌한 기분으로 시작하는데 도움이 된다. 아이들의 손에 이끌려 겨우 상체를 일으키던 예전의 아침과는 비교가 안된다. 겨우 일어난 아침에는 아이들을 대충 빵을 먹여서 학교에 보내기 다반수였는데, 아침에 여유가 좀 생기다 보니 그날그날 냉장고에 뭐가 있는지에 따라 약간의 요리를 해먹이기도 한다. 또 출근 전 약간의 여유를 이용해 아이들의 학습상태나, 준비물을 확인할 수도 있게 되었다. 긍정적인 변화의 연속이었다.


다만 일찍 일어나는 것에는 단점이 있다. 일찍 졸리다. 나이가 들어서인지도 모르겠지만 일찍 일어난 날은 밤 10시를 넘기기가 힘들다. 그 때문에 밤에 하던 일들이 갈 길을 잃어버려서 근무시간에 좀 더 바짝 일을 하거나, 아침시간 아이들이 깨기 전에 보충을 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전에는 집에 와서도 일을 해야 해서 마음이 무거웠는데(일 안 하고 자도 되는 날은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지금은 집에 와서 일단 잘 수 있어서 삶의 만족도가 조금 더 올라갔다.


워킹맘들의 어려움 중 하나가 나만의 시간이 없다는 것이라면, 나는 아침 시간을 활용하기를 적극 추천하고 싶다. 똑같은 거리를 똑같은 속도로 달리더라도 앞에서 달리는 것과 뒤에서 쫓기면서 달리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쫓기는 양상 자체가 심리적인 불안감을 추가적으로 양산하기 때문이다. 하루에 딱 2시간만 일찍 일어나 인생을 하루를 시작한다면 챙겨야 하는 집안팎 일들의 규모 자체는 줄어들지 않겠지만, 심리적 불안감을 진정시키는 대는 확실히 도움이 되는 것 같다. 특히, 아침의 일과를 루틴 하게 만들 수 있다면, 예측불가능한 일상으로 오는 스트레스도 훨씬 줄일 수 있다.


그렇게 잠 많은 내가 오늘도 5시에 일어났다면, 대한민국 사람들 중 적어도 2/3 이상은 해낼 수 있다고 믿는다. 만약에 나보다 더 잠이 많아 절대 불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일단 고 정주영 회장님의 명언으로 답을 하고 싶다, "이봐, 해봤어?"(명언 내용의 특성상 존칭은 생략합니다). 그런데 해봤는데도 안된다면, 그럼 어쩔 수 없지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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