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워킹맘의 엄마의 육아

듣고 배우는 게 아닙니다. 보고 배웁니다.

by 워킹맘

가끔 살다 보면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우리 엄마를 본다. 우리 엄마는 변호사도 아니었고, 워킹맘도 아니었다. 다만 나와 비슷한 성품과 생각을 가지고 애셋을 낳아 독박육아를 하면서 살아온 그 시대 아주 평범해 보일 수 있는 그런 사람이다. 내가 대학생 시절인지 고시생 시절인지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서 "나는 우리 엄마처럼 살고 싶어요"라고 이야기를 하자, 대단히 훌륭한 업적을 이루신 여느 친척분이 당최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너는 변호사씩이나 될 애가 왜 너희 엄마처럼 사니?"라는 질문을 하셨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도 늘 엄마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이토록 엄마를 존경하는 데는, 비단 내가 우리 부모님의 황혼육아의 수혜자라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 부모님이 내가 첫 아이를 낳은 순간부터 지금 막내아들에 이르기까지 내가 직장에 가고 없는 시간 동안 우리 아이들을 돌봐주시는 것은 사실이다. 그건 매우 감사한 사실이지만 감사와 존경은 또 다른 문제이다. 반대로 우리 엄마가 내가 닮고 싶은 그런 멋진 사람이기 때문에 마음 편하게 아이들을 맡겼다고 보는 게 맞다. 엄마가 나를 돌봐주셨던 그 방식으로 우리 아이들을 돌봐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일종의 스카우트인 셈인데, 10년이 지나가는 지금 나는 내 판단에 추호의 후회가 없다.


우리 엄마는 아들 둘, 딸 둘 있는 집안의 막내로 태어났다. 언니 오빠들과 나이터울도 좀 있기도 하고, 그중 몇 분이 동네에서 유명한 대단한 수재 셔서, 어려서부터 종종 비교와 압박을 받으셨다고 한다. 그래서 본인이 커서 아이를 낳으면 적어도 공부해라는 말은 하지 않기로, 단단히 마음을 먹으셨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딱히 내 학업에 크게 관심을 두지는 않으셨다. 늘 잘하고 있을 것이라고 믿으셨고, 어쩌다 좋은 성적을 받아오면 같이 기뻐해주셨다. 해외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수학 성적이 '가'가 나왔을 때도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고 물으신 정도였다. 아빠는 가끔 엄마가 우리들을 방치하고 있다는 생각에 잔소리를 종종 하셨지만 우리는 엄마의 '거리두기'와 '믿어주기' 덕분에 하고 싶은 거 다 하며 자랐다.


학업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엄마는 대학교 때 문득 공부가 재미있다는 사실을 깨달으셨다고 한다. 이후 성경공부, 운동공부, 영어공부, 건강공부 닥치는 대로 공부를 하셨다. 나의 어린 시절 내가 기억하는 엄마는 늘 책을 가까이하셨고 책을 읽다 와닿은 구절은 노트에 따로 필기를 하셨다. 덕분에 나도 엄마를 따라 서점에 자주 갈 수 있었고, 엄마가 요즘 무슨 생각을 하시나 고민이 있으신가는 엄마의 책장을 보면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엄마가 막내라는 사실은 가끔 아빠가 엄마를 부르던 별명에서도 드러난다. 아빠는 젊은 시절 엄마를 '천하태평'이라고 부르셨는데 그만큼 우리 엄마는 낙천적인 사고의 소유자였다. 특히나 재미있는 이야기라도 하면 크게 웃으셨는데 그 웃음소리는 듣고만 있어도 마음이 밝아지는 효과가 있었다. 기나긴 학교 생활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주방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저녁을 준비하시는 엄마를 도와드리곤 했는데 그 웃음소리가 듣고 싶어서 있는 이야기 없는 이야기를 들려드렸던 것 같다. 어쩌면 그냥 내가 말이 많아서 일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40대에 테니스를 시작하신 엄마는 자주 테니스장에 계셨다. 50대에 등산을 시작하신 엄마는 주말마다 산에 가셨다. 60대에는 골프를 시작하셔서 70대를 바라보는 지금도 매일같이 연습을 가신다. 재미있는 것은 한 가지에 꽂히면 아주 깊게 꽂히신다는 것이다. 우리 집에서 이루어지는 많은 활동들은 엄마가 시작하고 아빠가 함께 하시다 아이들에게 전수되는 패턴을 따랐다. 덕분에 지금은 테니스, 등산, 골프 모두 엄마만의 취미로 남지 않고 가족활동으로 자리 잡았다. 아이들을 뒷바라지하는 그런 가정주부와는 사뭇 다르게 이렇게 외부활동이 잦은 엄마에게 우리가 불평불만을 하면 "지금 이렇게 해놔야 나중에 애도 봐주는 거야"라며 농담 같은 이야기를 하셨었는데 황혼육아 10년 차인 지금 생각해 보면 대단한 선견지명이 아닐 수 없다.


나의 바람과 달리 나는 워킹맘의 길을 가고 있기에 내가 엄마랑 똑같이 사는 건 어려울 수 있다. 어떤 면에서는 엄마보다 더 많은 일을 하고 있지만 또 다른 면에서는 그때에서 엄마가 나에게 주었던 안정감이나 편안함은 아이들에게 주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 오늘날의 나를 있게 한 우리 엄마의 육아를 벤치마킹하려고 한다. 아이들의 일상에 꼬치꼬치 간섭하지 않기나, 공부하라고 할 시간에 내가 대신 공부하기 또는 책보라고 할 시간에 내가 책 보기, 아이들과 이야기할 때는 크게 웃어 주기, 그리고 운동은 꾸준히 하면서 남편과 아이들을 끌어들이기 등등.


우리 엄마는 포켓몬 같아서 지금도 계속 진화하고 있기 때문에 그 외에도 새롭게 벤치마킹할 일들이 쉴 새 없이 나온다. 어제는 엄마집에서 저녁식사를 앞두고 잠시 컨퍼런스콜을 해야 해서 엄마 책상에 앉았는데, 책상 위에 요즘 읽고 계신 책이 눈에 들어왔다. 제목은 "영원히 살 것처럼 배우고, 내일 죽을 것처럼 살아라"였다. 너무나도 우리 엄마 스타일인 책제목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고, 다시금 '우리 엄마 대단해~'하는 생각이 들었다.


올 해는 잠시 엄마와 떨어질 예정이다. 동생이 해외에서 곧 출산 예정이라 동생과 아가를 돌봐주러 동생네 집에 몇 개월 가시기 때문이다. 엄마는 6번째 손자(또는 손녀)라 전혀 걱정도 없으시지만, 유아기 때도 없었던 분리불안을 이제 내가 다 커서 겪게 될까 걱정이다. 하지만 또 엄마가 지금까지 가르쳐주신 각종 스킬을 구현하면서 잘 버티다 보면 돌아오시려니 하며 애써 마음을 달래 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지금의 너를 사랑하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