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의 의미
올해도 어김없이 여름휴가를 떠났고, 어김없이 여름휴가를 떠날 수 있음에 감사했다. 오늘은 휴가 이튿날로 차를 타고 이동 중 울산바위를 지나고, 차 안에서는 첫째와 둘째의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날은 덥지만 평온했고 아이들의 노랫소리는 다소 시끄러울 법도 했지만, 여유로운 나의 마음 상태 때문인지 마냥 경쾌하게 느껴졌다. 문득의 40대의 묘미 "불혹"의 의미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공자는 논어에서 "나는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에 자립하였으며, 마흔에 의혹이 없었고..."라고 했다. 나는 15살에 프랑스에서 돌아와 비평준화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으로 공부라는 걸 시작했고, 서른 살에는 입사와 결혼을 했으니 자립을 했다고 볼 수 있으며, 그렇다면 이제는 마흔을 넘겼으니 의혹이 없어야 했다. 그런데 만으로 마흔이 되었던 작년에는 업무과중으로 허덕이며 지속가능한 일과 육아의 가능성에 회의를 느끼며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 속에서 한동안 헤매었다.
그러다 우연한 계기에 세상이 나를 위해 바뀌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럼 나를 바꿔보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면서 이런저런 연구를 하게 되었다. 이런저런 계획표를 만들어서 써보고, 시간을 만드는 법에 대한 책을 찾아 읽고, 경제적 자립을 꿈꾸며 여러 팟캐스트와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번 휴가를 앞두고 생긴 약간의 시간을 활용해 비전보드를 만들고, 실행력 향상을 위한 연습의 일환으로 14일 챌린지를 시작했다.
챌린지의 내용인즉슨 14일 동안 6시에 일어나서 동네 한 바퀴를 가볍게 걷거나 뛰고(주말은 오전에 골프 라운딩과 교회가 있어 제외했다), 매일 업무시작 전 링크드인에 내 업무분야에 관한 짧은 소회를 남기는 것이었다. 대단한 목표를 세우면 금방 좌절하거나 포기할 것이 예상되었기에 자그마한 목표로 시작했다. 특히 아침에 일어나는 것은 나 혼자서는 조금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어서, 아이들을 끌어들였다. 일찍 일어나서 운동하는 습관을 들여서 아이들에게 나쁠 것은 없으니 말이다. 다행히도 엄마가 하는 것은 머든지 함께 하고픈 큰딸과 작은딸이 기꺼이 참여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챌린지에 성공하는 경우, 각자 그동안 가지고 싶었던 물건을 하나씩 사기로 했다.
6시에 아이들을 깨운다는 것은 쉽지 않다. 평소에도 깨우면 자판기처럼 벌떡 일어나는 큰딸은 괜찮았는데, 둘째 딸은 아직 2학년이다 보니 조금 어려움이 있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럼 중간에 그만두어도 된다고 말해 주었는데 그렇게 되면 엄마와 언니만 챌린지에 성공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는지 매일 아침 둘째도 무거운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올리며 따라 나와주었다. 동네 한 바퀴는 25-30분 정도 소요되었고 들어오는 길에는 동네 편의점을 들르기도 했다. 이렇게 작은 보상(간단한 간식)과 큰 보상(가지고 싶었던 물건)을 연결하여 동기부여를 계속해나갔다. 챌린지 뒤에는 여름휴가를 떠날 예정이었으므로 긍정적인 마음을 유지할 수도 있었다.
누가 들으면 '풋'하고 코웃음을 칠지도 모르겠다. 그게 머 별거라고 글을 쓰고 브런치에 올리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2주 뒤 작지만 유의미한 결과를 마주했다. 일단 체중이 조금 감소했다. 그리고 6시에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예전에 아침시간을 활용하고자 5시 알람을 맞추고 잘 때에는 일어나기가 굉장히 힘들었는데, 2주 챌린지를 마치고서는 계속 알람도 없이 5시 50분경 시쯤 눈이 떠지게 되었다. 공짜로 매일의 시간을 더 얻게 된 셈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나를 존중하게 되고 나를 더 사용해보고 싶어졌다.
ChatGPT는 불혹의 의미를 이렇게 해석했다. "사물의 이치에 밝아 흔들리지 않는 나이, 세상일에 잘 미혹되지 않고 중심을 잡을 수 있는 나이".
지금 돌이켜보면 각 취업과 결혼을 하고, 자립을 시작했던 30대의 나와 불혹을 맞이한 나는 엄연히 다르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비슷한 꿈과 열망을 가지고 있을 수 있지만, 그 실현 방법을 찾는 방식에서 나는 크게 달라졌다. 더 이상 세상이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해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으며, 어딘가에 불변의 정답이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무엇이든 꿈꿀 수 있으며,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내가 달리고 뛰고 넘어지고 일어섰을 때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공자가 말한 '사물의 이치'라는 것이 이런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지난 40년간 나를 사용하면서 일단 나를 잘 알게 된 느낌이 있다. 누군가 나라는 사람에 대해 묻는 다면 이름, 나이, 직업, 가족관계 등을 떠나 나라는 사람의 실체에 대해 조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예를 들면 예전에 누군가 전업주부 생활에 대해 묻는 나에게 "너는 집에 있으면 마트라도 나가서 일할 애야"라고 했을 때 그 의미를 알 수 없었다면 지금은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나는 지루함을 견디는걸 가장 힘들어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대해서도 지난 13년가량의 직장 생활을 통해 휘둘리지 않을 정도로는 알게 되었다. 남은 남이며, 직장은 직장 그 자체의 이익(이윤창출)을 위해 나를 이용할 뿐이며, 그 이외에도 쉴 새 없이 크고 작은 이해관계와 명분들이 얽히고설켜 예측가능한 또는 예측불가능한 일을 만들어낸다. 작게 보면 복잡하고 어렵지만 크게 보면 단순하고 쉬운 게 세상 이치 같다. 그렇기 때문에 그중 하나에 나의 인생을 걸 수 없고 더욱 중심을 잡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내가 내 인생에 있어서 스스로 중심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먼저 의욕이 생긴다. 또 의욕이 생기면 동기부여가 되고, 동기가 부여되면 머든지 하게 된다. 우리 아빠가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늘 말씀하셨던 "너희는 머든지 할 수 있어."라는 말이 문득 떠올랐다. 내가 나를 통제하고 움직일 수 있다면, 즉 나의 사용능력에 따라 내 미래는 얼마든지 달라지게 된다. AI가 성행하는 미래의 시대에서는 러닝커브가 단축되고, 취합 가능한 정보의 양도 무한대로 확대되기 때문에 내가 얼마든지 부지런하게 움직인다면 보다 크고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나는 10년씩 계획을 세우는 버릇이 있는데, 지난 몇 년간은 나의 40대 시절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에 대한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만약 내 40대가 30대와 전혀 다르지 않다면 그건 뭔가 별로일 것 같았다. 아이 셋을 낳고 전문가로서의 역량을 꾸준히 키워온 30대도 하루하루 모두 소중했지만, 나는 내가 40대에도 성장하는 모습을 계속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법률 전문가의 방향을 택한 만큼 이제 방향에 대한 고민도 없고 불혹의 나이에 접어든 만큼 방법에 대한 의문도 정리가 된듯하다. 그저 하루하루 달리고 쓰고 이루고 때론 좌절하고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간다면, 중심을 잡고 잘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 과정에서 나를 사랑하고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과 때론 웃고 때론 함께 울며 하루하루를 풍성하게 살아가면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30대 치열하게 고민하고 노력했던 그 시기를 넘어 방향과 방식을 정한 40대의 삶은 왠지 경주마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더 이상 주변 상황과 자기 의심에 시달리지 필요 없이 거침없이 앞으로 내딛을 수 있다면 그야말로 40대의 특권이자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10대에는 인생이 시속 10킬로로 지나가고, 20대에는 20킬로로(이후에도 동일 패턴으로) 지나간다면, 40대에는 40킬로로 퍽 빠르게 지나갈 테니 눈을 똑바로 뜨고 나의 40대를, 이 불혹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