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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억으로 꼭 그 집을 사야 해?

쏘쿨, <쏘쿨의 인서울 인강남 내집마련>

by 알뜰살뜰 구구샘

친한 친구가 전세 생활을 청산하겠다고 했다. 요즘 20억 정도 되는 집을 알아보는 중이란다. 친구는 맞벌이다. 게다가 부부 합산 연봉이 2억이 훌쩍 넘는다. 전문직으로 10년 넘게 일했으니, 그 친구에게 20억짜리 집은 소위 말하는 '영끌'은 아닐 것이다.


지방 소도시에 사는 나에게 20억은 정말 큰돈이다. 그 정도 돈으로 어디에 살 수 있을까? 영화 <기생충>에서 보던 그런 으리으리한 집에 살 수 있는 건가? 친구 녀석에게 어느 지역을 유심히 보고 있냐고 물어봤다.


"잠원역 근처로 보고 있어."


친구와 나는 호갱노노 앱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나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1. 신축 대단지는커녕

2. 나 홀로 아파트에 20평이 간신히 넘는

3. 화장실 하나짜리

4. 30년 넘은 구축 아파트


얘가 방긋 웃고 있는 게 아닌가?


"강 하나만 건너서 마포로 가면 34평 준신축 아파트도 살 수 있지 않아? 그럼 주차도 편하고 어쩌고 저쩌고..."


나는 평생을 지방에서 살았다. 친구 녀석은 대학 때 상경했고. 나는 '후천적 수도권 사람'이 된 친구 녀석의 뇌 속이 궁금해졌다.


"그래도 강남에 살고 싶어."


친구가 꼽은 건 인프라였다. 강남은 뭐든지 다 있단다. 강남에 없으면 대한민국에 없는 거란다. 물론 강 너머에도 웬만한 건 다 있다고 했다. 거기도 대형마트 있고, 영화관 있고, 소아과 있댔다. 하지만 '다 있는 것'과 '있긴 있는 것'의 미묘한 차이가 있다나?


그래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이 정도란다. 그 이상으로 가면 무리라고. 그래서 20억으로 잠원역 근처 나 홀로 구축 아파트를 보고 있단다. 해가 덜 들어도, 집이 좁아도, 녹물이 나와도, 주차할 때 테트리스를 해야 해도 상관없단다. 어쨌든 강남이어야 한단다.(물론 학군도 생각했단다.)


강남에서 친구를 만나고 진주로 돌아가는 버스 안, 나는 4시간 동안 책을 읽었다. 마침 가방 속에 들어있던 책은 <쏘쿨의 인서울 인강남 내집마련>이었다.


이 책의 저자는 '월급쟁이 부자들'로 유명한 부동산 쏘쿨이다. 그는 서울에서 태어났는데, 오랜 기간 경기도에서 살다가 다시 서울로 돌아왔단다. 그리고 "왜 서울이어야 하는지, 그리고 왜 강남이어야 하는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책을 펴냈다. 그중 기억에 남는 걸 적어보면


"출퇴근 지옥철이라는 말, 강남에 살면 실감하기 힘들어요. 출근길에 서쪽으로 가는 2호선 열차는 널널하거든요. 퇴근길도 마찬가지고요. 강남에서 동쪽으로 가는 퇴근 지하철은 널널해요. 서초 송파 사는 사람에겐 그게 당연한데, 그 당연한 걸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생 모르고 살죠. 이게 얼마나 삶의 질을 올려주는지를요."


나는 평생을 지방에서 살았다. 그러니 지옥철의 맛도 모른다. 유튜브에 9호선 지옥철이라고 검색해 보니, 정말 사람 할 짓이 못될 것 같긴 하더라. 그래도 진짜 이게 '30년 넘어 녹물 나오는 좁은 나 홀로 아파트'를 20억에 사는 이유가 될까..? 조금만 더 동쪽으로 가서 '단군이래 최대' 어쩌고 하는 새 아파트 국평에 살면 안 되나? 아니면 조금만 더 서쪽으로 가서 흑석뉴타운이니 뭐 그런데 살면 안 되나..?


내 호주머니에 20억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나는 그렇게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나는 아직

-'더현대' 팝업스토어에 관심 없는데...

-가로수길 애플스토어에 관심 없는데...

-'흑백' 파인다이닝도 관심 없는데...


나는 언제쯤 '강남'의 참맛을 공감할 수 있을까?

나이가 더 들어서 Big5병원을 들락거릴 때쯤이면

삼성서울병원 가는 ktx 안에서 눈물 훔치며 이해하려나?



(물론 내가 친구랑 같은 상황이라면? 나도 똑같이 '그 집'을 살 것 같다ㅠ.ㅠㅋㅋ)



사진: Unsplash의Jarek Cebors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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