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인간 - 유현준
교권은 어쩌다 나락 갔을까? 교사는 왜 인기 없는 직업이 됐을까?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가성비, 저출생, 민원 등 다양한 키워드가 떠오른다. 그런데 이 책, <공간 인간>을 읽고 알게 됐다. 교권이 나락 간 데는 '공간'도 한몫했다는 것을.
이 책을 쓴 유현준 작가는 건축가 교수다. 인문학과 건축을 콜라보 하는 데 도가 튼 사람이다. '셜록 현준'이라고 137만 명의 팔로워가 딸린 유튜브도 운영한다. 이번 책은 그가 7번째로 낸 책이다. 여기서 은근 많이 등장하는 게 '교실'과 '교사의 권력'이다.
유현준 교수는 이 책에서 '교사가 권력이 있는 이유'를 '공간'에서 찾는다.
1. 높은 교단
위에서 내려다보는 사람이 권력자다. 교단은 교사의 권력을 높여주는 공간적 장치다.
2. 책상 방향
시선이 모이는 곳에 권력이 생긴다. 책상 방향 덕분에 교사는 자연스레 권위를 가지게 되었다.
3. 넓은 교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땐 한 반에 43명이었다. 우리 아버지 세대에는 한 반에 80명이었단다. 원래 '많은 사람'의 시선을 한몸에 받을수록 권력이 커진단다.
유현준 교수는 1969년생이다. 그는 전두환 시절 학창 시절을 보냈을 것이다. 그러니까 책에 교사와 권력을 엮어낼 것이다. 그런데 어쩌죠 교수님? 요즘 교실은 좀 달라요. 2025년 현재 교실이 어떻냐면요.
1. 사라진 교단
나는 10년 넘게 초등학교에서 일하고 있다. 그런데 단 한 번도 '교단'을 본 적이 없다. 그냥 교과서에서 '일제의 잔재'라고 사진으로 봤을 뿐이다. 그나마 10여 년 전엔 '교탁'이라는 게 있었다. 서서 수업할 때 책 올려놓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도 사라진지 오래다.
2. 사라진 시선
요즘은 모둠형 수업을 많이 한다. 교실을 ㄷ자로 만들어서 학생들이 서로를 바라보게 하는 경우도 많다. 그나마 코로나를 거치면서 다시 예전 스타일로 돌아간 것 같다. 서로 침 튀기는 거 싫어하니까. TV와 전자칠판의 도입도 시선 분산에 한몫했다. 요새 학생들은 교사를 안 본다. 다들 화면을 본다. 시선이 모이는 곳에 권력이 있다고 했는데, 그 권력을 OLED가 다 가져갔다.
3. 좁은 교실
요샌 한 반 학생 수가 25명 내외다. 자연스레 교실 크기도 작아졌다. 요새 짓는 학교는 교실이 진짜 좁다. 학생 사물함과 책상은 더 커졌는데, 공간은 더 좁아졌다. 대신 학생들이 자유롭게 놀 수 있는 공간이 늘어났다. 복도에서 놀이할 수 있는 공간도 커졌고, 화장실도 훨씬 널찍해졌다. 학교 민주화의 영향이다.
이렇게 보니 이해가 됐다. 보수적일 것 같은 학교도 공간이 많이 변한 것이다. 당연히 1980년대 교사에 비해서 2025년의 교사의 권위는 낮아질 수밖에 없다. 공간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나도 10년 넘게 교사하면서 별의별 일을 다 겪었다. 뉴스에 나온 선생님들이 겪으신 일들, 나도 웬만한 건 다 겪었다. 그래서 그 고통이 뭔지 뼈저리게 알고 있다.
그렇다고 집 나간 교권이 제 발로 돌아오는 건 아니다. 당연히 누가 떠먹여주지도 않는다. 예전에는 공간이 자연스럽게 교권을 높여줬다. 하지만 이젠 스스로 찾아먹어야 한다. 나는 어떻게 발버둥 치고 있냐고?
1. 교단은 없지만, 시범으로
이젠 교실에 교단이 없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권력자의 시선은 사라졌다. 그래서 난 시범을 먼저 보이는 것으로 권위를 높인다. 예를 들면
-내가 먼저 일기를 쓴다
-내가 먼저 바느질을 해본다
-내가 먼저 앞구르기를 해본다
-내가 먼저 단소를 불어본다
-내가 먼저 높임말을 쓴다
...요즘은 앞구르기 하면 뼈마디가 괴성을 지른다.
2. 시선을 내게 모은다
나는 교과서에 없는걸 많이 가르쳐 준다. 내가 리얼 월드에서 좌충우돌하며 배운 썰을 푼다. 그러면 학생들의 태도가 달라진다. '어디 한 번 들어보자' 모드로 바뀐다. 그러기 위해선 내가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
3. 교실 '밖'에서도 시선을 모은다
나를 바라보는 학생의 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한 반에 학생 수가 줄어드니까. 대신 교실 밖에서 나를 바라보는 시선을 늘리면 된다. SNS가 그 방법이다.
등굣길, 우리 반 학생이 다른 반 학생에게 나를 소개하는 말을 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우리 반 선생님 인스타 팔로워 8천 명이래' 어깨를 으쓱해하는 우리 반 학생의 모습을 뒤에서 보고 있자니, 내 어깨도 으쓱해졌다.
교실은 좁아지고 있다. 교권도 나락 갔다. 학교 공간은 이제 우리를 책임지지 않는다. 이제 담임인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나는 '시범', '배움', 'SNS'에서 그 답을 찾았다.
내가 이렇게 발버둥이라도 쳐야
교실이 무너지지 않는다
그래야, 학생들을 구할 수 있다.
나는 그게 교사가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