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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치약을 짤 때의 마음으로

아끼지도 주저하지도 않는

by 아빠 민구

정시 퇴근을 위해 노력하다 보면 하루가, 하루 속에 내가 고갈되어 버리는 느낌을 받는다. 이대로 다 소진되어 버리는 것은 아닐지, 다 써버린 치약을 비틀고 조르며 마지막 한 번의 양치질을 시도하는 것과 같은 매일이다. 이젠 더 나올 게 있나 싶지만 신기하게도 '내-일'은 어김없이 반복된다. 이젠 끝인 걸까- 하다가도 튜브를 잘라보면 남은 게 있다. 아마 나를 반 자르더라도 남은 게 있을지 모른다. 정말 끝은 잘라보기 전엔 모른다.


하지만 그런 고갈된 마음으로 매일을 버텨가는 건 어려운 일이다. 뇌과학적으로 시간과 금전의 여유가 없는 상태에서는 판단력과 지능이 떨어진다고 한다. 일반적인 지능의 사람이 경계선지능 수준까지도 될 수 있다고 하니, '여유'야말로 하나의 스펙이자 자산이다. 어쩌면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집에서 태어났거나 부모의 여유 있는 태도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영리하게 보이는 건 그런 이유에서 일지 모른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환경 탓만 하면서 지낼 수는 없지 않은가.


물리적으로 여유가 없다면 마음과 태도를 바꿔 여유를 만들 수도 있다. 아무리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마음 한 구석 한 평의 정도의 여유를 만드는 것 정도는 가능하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깨달은 바로는 작은 것들에 조급해하고 적은 것들에 불안해하는 것을 극복하는 좋은 방법은 절대자를 떠올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더 좋은 길로 인도하시리라는 것, 내가 가져야 하는 어려움이 맞다면 하나님의 계획을 위한 연단의 시간이라는 것, 구원의 대속사를 생각하면 이 모든 것들이 별것 아니라는 것.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 하는 일이, 겪는 어려움이, 부족한 무언가가 대수롭지 않다. 다시 새 치약을 짤 때의 마음으로 되돌아가 아끼지도, 주저하지도 않는 마음으로 현실에 임할 수 있다. 물론 그런 마음이 지속되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작심삼일의 취약점은 끊임없는 작심이라는 처방전이면 된다. 일 년에도 수 백 번의 새로운 치약을 짜노라면 입안 가득 민트향이 퍼지는 듯한 상쾌함이 몰려온다. 여유가 쫓아온다.


불길 속에서 사우나를, 굶주림 속에서 간헐적 단식을, 촉박함 속에서 뒷짐을, 결핍 속에서 여유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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