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또 다른 인연을 만나는 과정이다.
다람쥐들이 숲 속으로 돌아갔던 바로 그 해 여름에, 아기 고양이가 내 방 바로 앞 화단에 터를 잡았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8월, 창문을 열고 잠을 자고 있는 어느 날 밤에, 밤새 어미 고양이를 찾는 아기 고양이가 애달픈 울음을 토했다. 잠을 깬 나는 방충망을 열고 화단 앞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주변을 둘러보아도 아기 고양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서야 아기 고양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수업을 가던 낮 시간에, 아기 고양이는 내 방 바로 앞 화단에서 뛰놀고 있었다. 노란색 줄무늬를 가진, 겁에 잔뜩 질린 듯한 애틋한 눈빛을 가진 아주 조그만 고양이었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아기 고양이와 똑같이 고양이 목소리로 아기 고양이를 불렀다.
“아이고, 너였구나. 야옹, 야옹.”
아기 고양이는 낯선 내가 두려운 나머지 내 방 창문 바로 밑에 나 있는 작은 구멍, 자신의 은신처로 재빠르게 몸을 숨겼다. 나는 집으로 다시 돌아가 참치 캔과 그릇에 물을 담아 아기 고양이가 숨은 은신처 앞에 놓아두었다. 그때 당시 나는 다람쥐들을 숲으로 보내주고 나서 허전함과 아픈 마음을 숨길 수 없었는데, 보이지 않는 인연의 끈이 아기 고양이를 만나게 해주는 것만 같아 반가웠다. 너무 작아 아직은 어미 고양이 품에 보호를 받아야 할 것 같았는데 어떤 이유였는지 모르겠지만 아기 고양이는 어미 고양이로부터 버림을 받은 것 같았다.
나는 그 뒤로 고양이가 좋아할 만한 고양이용 참치 캔을 매일 사서 아기 고양이 은신처에 놓아두었다. 아기 고양이의 모습을 보는 것은 어려웠지만, 먹이를 다 먹었는지 궁금해서 수시로 창문을 열고 화단을 확인하는 게 어느새 나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먹이를 먹었는지 궁금해 그 날 퇴근 후, 화단을 보았다. 아기 고양이는 며칠을 굶었는지 참치 캔을 싹싹 다 비워놓았다. 옆에 놓았던 물그릇 안에 물도...
그러던 어느 날, 아기 고양이가 또 창문 밖에서 애달픈 울음을 토했다. 나는 재빨리 창문을 열고, 화단 앞을 살펴보았다. 아기 고양이는 놀라서 창문 맞은편에 작은 흙구덩이 속에 몸을 숨겼다. 나는 아기 고양이를 계속 부르며 말을 걸었다. 고양이의 목소리를 흉내 내가면서.
“아이고, 내가 무서워? 안 무서워해도 돼. 배고프구나~ 야옹, 야옹.”
아기 고양이는 몸은 반쯤 숨긴 채, 호기심 어린 눈 반, 겁먹은 눈 반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야옹, 야옹~ 잠깐만 기다려.”
나는 얼른 부엌으로 가서 고양이용 참치 캔을 꺼내 아기 고양이 있는 쪽으로 던져 주었다. 아기 고양이는 먹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내가 아직도 무서운지 먹이를 먹지 못한 채 내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자리를 피해주었다.
그때 먹이를 주는 사람이 나란 걸 확인하게 되어서인지, 그 후로 아기 고양이는 내가 “야옹” 하고 부르면 “야옹, 야옹.” 하면서 대답을 해주었다. 그러다가 하루는 내 방 창턱에 아기 고양이가 올라와서는 내 방 안을 들여다보았다. 나는 깜짝 놀란 채 여느 때처럼 아기 고양이에게 말을 걸었다. 용용이라는 이름도 불러주면서.
“용용아, 이젠 여기도 올라오는 거야? 더워서 여기 오고 싶지~”
용용이는 피하지 않고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얼른 창 밑으로 뛰어 내려가 내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먹이를 달라고 말을 거는 듯이. 그 뒤로 용용이는 아침 시간만 되면 창 턱에 올라와서는 “야옹, 야옹.” 소리를 냈다. 그때마다 나는 용용이에게 아침밥을 챙겨주었다. 그 후로 용용이는 창문 화단에 수시로 올라왔다. 화단에서 매달리며 장난을 치다가 떨어지기도 하고, 화단 앞 개미나 파리를 쫓으며 장난을 치기도 했다. 물그릇 하고 장난치다가 물그릇 위에 오롯이 앉아 하늘에 떠 있는 초승달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했다. 가끔 용용이 어미 고양이도 왔는데, 그때마다 용용이는 애달프게 울었고, 어미 고양이는 용용이를 크게 혼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용용이는 울음소리를 뚝 그쳤다.
늘 고요하던 내 방 앞에 어떤 존재가 함께 한다는 건 일상에 큰 기쁨으로 다가왔다. 마주 보며 함께 대화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많은 위로와 힘이 되어주었다. 그렇게 아기 고양이와 함께 아름다운 추억이 쌓여갈수록 무언가 책임질 존재가 있다는 생각에 내 마음은 한 뼘 한 뼘 성장해갔다.
더불어 아기 고양이도 무럭무럭 성장해갔다. 그 해 가을에 용용이는 제법 성장한 성인 고양이가 되어, 여자 친구에게도 먼저 다가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한 해가 지난 어느 날부터는 더 이상 내게 먹이를 구할 필요가 없어졌는지 찾아오지 않았다. 가끔 화단 앞을 노닐며 모습을 보였어도, 내 방 창문 앞에 다가와 ‘야옹’하며 부르는 일은 없었다. 다 성장했어도 다른 길고양이에 비해 작은 체구를 가진 용용이는 다른 큰 고양이들로부터 공격을 받기도 했다. 그런 일들이 잦아지자 터전을 옮긴 건지, 아니면 숨을 거두게 된 건지 지금은 아예 모습을 볼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길고양이가 더럽고, 불결하다는 이유로 싫어하지만, 내게 온 용용이는 더럽지도, 불결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내게 행복이라는 선물을 주고 갔다. 무더운 여름부터 그다음 해인 추운 겨울까지 그렇게 세 계절을 나와 함께 했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은 늘 공존한다.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가 나와 용용이를 만나게 해 주었고, 만남의 때가지나 헤어지게 되었다.
다음... 그다음 해에는 또 어떤 인연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매일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더불어 만남의 끝이 늘 존재하기에, 앞으로 만나게 될 인연과 지금 함께하고 있는 인연들을 소중히 여겨야겠다는 다짐도 함께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