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챌린지_Day 91
박소령의 《실패를 통과하는 일》을 읽다, 질문 하나가 날카롭게 다가왔다.
“이 사업이 인간의 본성 중 어떤 것을 건드리는가?”
책은 성경에 등장하는 일곱 가지 죄악이 각각 어떤 거대 서비스와 맞닿아 있는지 짚어준다.
교만은 인스타그램,
시기는 페이스북,
분노는 트위터,
나태는 넷플릭스,
탐욕은 링크드인,
탐식은 옐프,
색욕은 틴더.
인간의 본능을 가장 세련된 방식으로 자극한 기업들이 세상을 움직이고 있다.
사업가는 아니지만, 이 질문을 읽는 순간, 글을 쓰는 일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업가가 인간의 본성을 건드려 세상을 움직이듯, 글도 마음 한가운데를 겨냥해야 한다. 하지만 글은 단순히 인간의 어둡고 원초적인 본성을 자극하는데만 그친다면 부족하다. 본성을 '통과'해야 한다.
글쓰기는 결국 욕망의 다른 이름이다.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 이해받고 싶은 마음, 혹은 인정받고 싶은 마음. 문장은 언제나 어떤 결핍에서 비롯된다. 내 문장이 누군가를 울리거나 분노하게 했다면, 그것은 그의 본성 한쪽을 건드렸다는 뜻이다.
매일 수없이 쏟아지는 글을 보면 대부분 자극적이다. 짧은 문장, 강렬한 문구, 공감의 미끼. 빠른 클릭을 부르지만, 깊은 사유를 남기지는 않는다. 글이 공포, 쾌락, 감동 같은 인간 본성의 스위치만 누른다면, 그것은 마케팅이다. 그러나 본능을 벗겨내 그 안에 숨은 진실을 보여줄 때, 비로소 문학이 된다. 사업가가 ‘사랑받고 싶다’는 본능을 이용해 제품을 팔 때, 작가는 ‘왜 우리는 끝없이 사랑받고 싶어 하는가’를 묻는다. 본성과 충동이 품고 있는 진실과 슬픔, 그리고 그 안의 신비를 탐구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작가도 독자도 언어를 매개로 각자의 그림자와 마주한다. 독자가 내 문장을 읽고 웃거나 울며, 문득 멈춰 서는 그 순간, 나는 그 반향 속에서 내 안의 교만과 두려움, 연약함을 본다. 글쓰기는 바로 그 마주침의 자리에서 이루어진다. 독자의 본성을 건드릴 때, 나 또한 내 본성의 어두운 골목을 지나며 말과 마음의 흔적을 남긴다. 그렇게 글은 서로의 내면을 스치며, 어둠과 욕망을 지나가는 길이 된다.
오늘도 나는 경계 위를 걷는다. 문장을 쓰며 인간의 본성을 건드리되, 그곳에 갇히지 않으려 애쓴다. 유혹이 아닌 성찰로, 자극이 아닌 이해로, 욕망이 아닌 변화로 나아가기 위해. 인간의 밑바닥을 드러내면서도, 그 어둠을 통과해 마침내 빛을 보기 위해.
책 읽어 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 단편소설 '지금, 정상'으로 소설가 등단.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윤소희 작가와 함께 책 읽기’ 등 독서 커뮤니티 운영.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심리장편소설 <사이코드라마>와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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