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챌린지, 99일의 기록
한 남자가 나를 구했다. 그의 오른쪽 다리는 무릎 아래가 잘려 뭉툭하게 남아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거침없이 내 앞을 걸었다. 나는 그의 발걸음을 따라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왔다. 처음에는 단순히 안도했다. 누군가가 나를 이끌고 있어 안전하다는 감각. 그의 불완전한 발걸음이, 이상하게도 나를 살리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의지했고, 동시에 그의 발걸음을 주시하고 있었다.
100일 챌린지를 시작한 후, 나는 매일 새벽 글을 썼다.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고 쑥과 마늘만 먹으면,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99일째 글을 올린 후, 나는 알았다. 진정한 회복은 곰이 사람이 되거나, 내가 아닌 누군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결핍 속에서도 나인 채로 나아가는 일이라는 걸. 결핍은 결함이 아니다. 잘린 다리로 거침없이 걸으며 나를 구하는 남자를 보고, 깨달았다. 상처와 부족함 속에서도 힘을 잃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그 남자는, 어쩌면 나, 그리고 내 글일지 모른다.
어제, 우연히 예전에 강연에서 만났던 10대 소녀들을 마주쳤다. 내가 모멘트에 올린 100일 챌린지 글을 보고 있다고 했다.
“모멘트 너무 재미있어요.”
글이 살아 있는 존재로 타인에게 닿을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세대를 넘어, 삶의 시간차를 뛰어넘어, 내 글이 누군가의 하루에 스며들고 있다는 감각은 묘하게 따뜻하고 든든했다. 99일 동안 매일 쓴 문장들이, 상처와 결핍을 숨기지 않은 채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였다.
99일 후, 꿈속에 나타나 나를 구한 남자. 한쪽 다리를 잃었지만,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그는 불완전하지만 나를 구해낸 내 문장들이었다. 99일 동안 나는 한 번도 완벽을 좇은 적이 없다. 부서지고 모자란 언어, 그리고 못난 나 자신을 그대로 끌어안았다.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 더 중요해졌고, 과정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구할 수 있었다.
100일째 글을 쓰지 않은 건 멈춤이 아니었다. 오히려 멈추지 않고 계속 나아가기 위함이었다. 부러진 다리로도 걸을 수 있다. 상처와 결핍을 온전히 품고, 나는 계속 나아갈 것이다. 쓰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하며.
100일 챌린지는 끝났지만, 글쓰기는 결코 끝나지 않았다. 다리 잘린 나의 뮤즈가 앞서 걸어간 그 길 위에, 나는 불완전하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한 걸음을 내디딘다.
*그동안 100일 챌린지, ‘대충하지만, 매일 씁니다’를 사랑해 주신 독자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무기력 속에서 발버둥 치며 써 내려간 글들이, 조금이라도 위로와 희망이 되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책 읽어 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 단편소설 '지금, 정상'으로 소설가 등단.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윤소희 작가와 함께 책 읽기’ 등 독서 커뮤니티 운영.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심리장편소설 <사이코드라마>와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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