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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무암 Nov 17. 2023

쓰지 못하는 날들

지금의 나에게는 ‘쓸 수 없다’라는 말은 ‘마음을 들여다볼 수 없다’와 같은 말이다. 양다솔 작가의 표현을 빌리면 ‘내 발등에 떨어진 글감’은 ‘나’ 뿐이라서 다른 어떤 것에 관해 이야기하려면 할 말이 없다. 마침표 하나하나 막다른 길처럼 느껴진다. 이런 나는 지난 몇 주 아무것도 쓸 수 없었다. 처음 며칠은 쓰다가 고통스러워서 멈췄고, 그다음은 쓰는 것이 두려워 시작하지 못했다.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은 생각보다 자주 고통스럽다. 보통 의문으로 시작한다. 왜 이런 마음이 들었을까? 또는 요즘은 왜 그때 생각이 자꾸 날까? 의식이 흐르는 대로 쓰다 보면 과거의 어느 순간에 이르는데, 그저 기억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때 그 장소, 그 시간에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당시의 장면이 눈앞에 펼쳐지고, 소리, 온도, 그때의 마음이 그대로 느껴진다.


엄마가 다시 들어오라고 할 때까지 얇은 잠옷 차림으로 문밖에 있었던 때, 나는 깜깜한 복도에서 한 발짝도 더 움직이지 못하고 현관문에 바짝 붙어있다. 위층에 있는 소화전의 조명이 깜빡인다. 몇 번이나 깜빡이면 엄마가 나를 부를까, 생각하던 그때 그 현관문은 얼마나 차가웠는지. 그때 나는 얼마나 두려웠는지 너무 선명하게 느껴지면 견디지 못하고 멈춘다. 그만. 한참 울고 나면 다시 현재. 이 마음을 어떻게 추슬러야 할지 알 수 없어서 밖으로 나간다. 시간이 얼마나 지나는지 알지 못할 만큼 걷고 나면 지쳐서 집으로 돌아온다.


선생님은 글을 쓰면서 만나는 과거의 감정을 피하지 말고 충분히 느껴야 한다고 했다. 두려움, 무력감, 통증, 분노 전부. 그게 뭐든 전부 그때 제대로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 다시 마주하는 거라고. 다 느끼고 흘려보내야 한다고. 내가 외면한 수많은 마음을 다 만날 수 있을까. 그것을 다 흘려보낼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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