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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무암 Jan 13. 2024

자주 만나자, 나 자신

열매글방 (1/9) : 거울

“거울은 잘 봐요?”


나를 그려보라는 숙제를 받고 그림자를 그려갔던 날 선생님이 물어보셨다. 언제 거울을 봤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예전에는 자주 봤던 것 같은데, 화장을 아예 안 하기 시작한 후부터 안 본 건가. 그러면 아마 2~3년쯤 되었을까. 30년 넘게 내 몸과 함께 살았으니 구석구석 익숙하지 않은 곳이 없어서, 거울을 보지 않아도 씻고 기초 화장품을 바르고 옷을 입고 나가는 데에 불편함이 없었다. 가끔 주변 사람들이 옷이 헤진 부분이나 티끌을 발견해 주면 부끄럽긴 했지. 아,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병원을 가보겠다고 마음먹었을 즈음에는 자주 너무 춥게 또는 덥게 입고 나가긴 했다. 신발을 짝짝이로 신고 간 걸 회사에 들어가기 직전에 발견했던 적도 있고.

상담을 마치고 집에 가서 화장대 앞에 앉아본다. 이렇게 큰 거울이 있는데 그동안 보지 않고 있었구나. 오랜만에 거울 속 나와 눈을 마주하고 내 표정을 살펴보려는데, 너무 울어서 붓고 빨갛게 된 눈을 오래 마주하는 건 쉽지 않다. 자세히 잘 들여다볼 수 있어야 나를 그릴 수 있겠지. 우리 집에는 전신거울이 두 개나 있고, 화장대 거울 하나 손거울 하나가 있다. 화장실에도 거울이 있고. 많기도 하네.

요즘은 자주 들여다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침에 출근 준비를 하면서 꼭 한 번은 보려고 하고, 약속이 있는 날에는 안 하던 화장을 하기도 한다. 아직 내 눈, 코, 입을 그려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나를 보는 것에는 익숙해지고 있다.

조금 더 자주 만나자, 나 자신. 내가 보러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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