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글방 (2/12) : 설
일 년에 세 번 반드시 반복되는 주제가 있다. 반복되는 와중에 새로운 이야기가 더해질 때도 있고, 더 이상 더할 이야기가 없어도 반복하지 않고는 그 며칠을 넘어갈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그 이야기는 쉬이 잊을 수 없는 상처를 냈거나 극복하기를 포기한 트라우마를 남겼기 때문에, 화자는 오래 전 일이라도 마치 어제 일인 것처럼 생생하게 전달한다. 듣는 이는 주로 화자의 자식이다. 이야기를 들어볼 법한 사람이 한 명 더 있지만 그는 그 이야기 속 가해자에 본인이 포함되는 순간 자리를 떠난다. 듣는 이들은 제한된 정보 속에서 자연스럽게 화자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직접 겪지 않은 일이 나에게 일어난 것처럼 공감을 넘어 울분을 토한다. 일 년에 세 번이지만 최소 2주 전부터 시작된 준비 과정과 이틀 동안 깨어있는 모든 시간 끝없이 노동하는 것은 정말이지 너무 힘들어서, 화자와 듣는 이들을 하나로 뭉치기에 충분했다. 화자를 괴롭게 한 사람들은 참으로 무자비하고 몰인정하며 그들의 악행은 끝이 없어서, 사건의 배경은 이야기에 낄 틈이 없고 가해의 순간만이 듣는 이에게 전해진다. 듣는 이는 매 순간 확실한 화자의 편이어야 했으므로 ‘대체 왜?’라는 질문은 쉬이 꺼낼 수 없다.
노동이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 이야기 속 주인공들이 그들의 듣는 이와 함께 도착하면, 화자는 이야기를 멈추고 그들을 맞이한다. 언젠가부터 노동에 참여하지 않는 것을 아주 당연하게 여기는 그들이 괘씸하지만, 화자는 감정을 능숙하게 뒤로하고 그들과 인사를 주고받는다. 감정을 감춘 것은 그 쪽도 마찬가지였었는지, 양쪽의 듣는 이들은 어색하게 인사를 나눈다. 왠지 모르게 듣는 이들은 서로가 반가워선 안될 것만 같아서, 성인이 된 후에도 한참 서로를 편히 바라보지도 제대로 대화를 나누지도 않는다. 듣는 이들이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어색한 사람에게 반갑게 인사할 수 있는 시기가 되면, 마침내 그들도 화자들의 감정과 기억을 뒤로하고 능숙하게 인사를 주고받고 안부도 묻는다.
수일간 이어진 노동의 결과물이 약 20분 간 활용된 후 다시 부엌으로 돌아오면, 화자가 미리 준비한 음식이 바로 그 자리를 다시 채운다. 듣는 이들이 화자의 울분이 버무려진 음식을 겨우겨우 먹어내는 동안 화자는 이야기 속 주인공들이 돌아가기만을 기다리며 부엌에서 뒷정리를 한다. 듣는 이들은 망언이 쏟아지는 광경을 더 견디지 못하고 화자를 도와야 한다며 부엌으로 피신한다. 그 순간 만큼은 어색한 양쪽의 듣는 이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부엌일을 나눠 갖는다. 정도가 다를 뿐 모두가 불편한 시간이 지나고 이야기 속 주인공들이 떠나면, 화자와 듣는 이들 그리고 또 한 사람은 기진맥진하여 각자의 공간에서 잠든다. 흙탕물이 다시 맑아질 때까지, 온전히 맑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고요해질 때까지.
이야기 속 주연이 세상을 떠난 지금은 노동도 이야기도 반복되지 않는다. 이야기 속 조연과 화자가 처음으로 마음이 맞아, 서로 만날 일이 없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처음으로 화자와 그들 사이에서 역할을 해 낸 순간이었다. 노동을 하지 않아도 이야기가 가끔 튀어 오르는데, 약속이라도 한 듯 화자와 한 사람은 더 들쑤시지 않는다. 마침내 듣는 이들은 내 것이 아닌 기억과 감정을 서서히 흘려보내고, 삼켰던 질문들을 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