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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 달 Aug 28. 2024

너의 세계를 모두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적응해 나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애를 처음 인지하기 시작한 건 점심시간이었다.


  큰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한껏 짜증을 내고 있길래 무슨 일이냐 물었다. 아이는 손가락으로 반찬을 가리켰다. 김치가 옆에 있는 반찬에 살짝 묻어있었다. 깨끗한 숟가락으로 살짝 치워주려고 하자 머리를 쥐어뜯으며 싫은 티를 냈다. "그럼 다시 받을까?"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한 번은 그럴 수 있지.



  문제는 그런 강박이 한 번이 아니라는 데 있다.



  이번에는 조리원 선생님이 꽃게탕을 떠 줄 때 밥에 살짝 튄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매번 식판을 다시 받아줄 수도 없는 노릇이라 아이의 숟가락으로 살짝 걷어내주었더니 또 눈물을 그렁그렁하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한쪽 눈도 자꾸 심하게 깜박였다. 틱증세였다. "호연아, 이건 정말 아니야. 선생님 눈에는 국물이 튄 게 보이지도 않아." 아이는 먹는 내내 싫은 티를 내면서 아무것도 묻지 않은 밥알에서 매운맛이 나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결국 몇 숟가락 뜨지도 않고 밥을 버렸다.



  학습 활동을 할 때도 호연이의 고집과 강박은 특별하다.



  "곤충을 너무 잘 그렸네. 하지만 다리 부분을 조금 더 그리면 좋을 것 같은데?" "바탕을 색칠하지 않았구나. 조금 더 해볼까?" "국어활동은 00쪽이 아니라 00쪽까지 하는 거야."라고 조금 더 해볼 것을 권할 때마다 눈물이 다시 그렁그렁, 머리를 쥐어뜯으며 눈을 깜박인다.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씩씩대며 자리로 들어가는 호연이의 모습을 볼 때면 '내가 오히려 이 아이를 힘들게 하는 것은 아닐까, 내 방식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고민하게 되지만, 그렇다고 아이의 어리광을 매번 들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네 뜻대로 되지 않는 일도 있는 걸.'



  늘 먹고 싶은 반찬만 먹을 수도 없고, 내가 하고 싶은 활동만 참여할 수도 없다. 때로는 친구들에게 양보해야 할 일도 있고, 조금 더 열심히 노력해야 얻을 수 있는 성취도 있다. 나는 호연이가 그걸 알았으면 했다.



  몇 번의 기싸움과 몇 번의 학부모 상담을 거쳤다. 어머님은 호연이가 보였던 구체적 행동과 나의 지도 방식을 듣더니 선생님이 하시는 대로 하면 좋겠다고 했다. 틱증세에 대해서도 인지하고 계셨다. 할머니랑 아이의 아버지가 늘 어리광을 받아주는 것이 문제인 것 같다고 하셨다. 어머님은 오히려 단짝 친구가 없는 것을 걱정하셨다.



  "하지만 어머님, 호연이처럼 혼자 노는 것을 더 좋아하는 친구도 있어요. 아이가 괜찮다면, 저는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호연이를 조금 다르게 보기 시작한 것은 8 자 놀이를 하러 학교 마당으로 나간 날이었다. 모두 신이 나서 8 자 놀이에 집중하고 있는데 호연이는 가만, 학교 뜰을 보고 있었다. 그 애는 뜰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빙긋 웃으며 내게 말했다.



"선생님 민들레가 있어요."



  봄바람이 살랑 불어왔다. 무엇이 그렇게 신기했길래, 민들레에게 눈길이 갔을까. 시끌시끌 한 8자 놀이나 풍선 던지기보다 민들레 꽃씨에 눈길이 가는 너는. '너만의 세계'를 가지고 있는 거겠지.



  요즘 호연이는 전보다 자주 눈을 깜박이지 않는다.



  수요일마다 나오는 바나나우유를 아이들은 좋아하지만, 너는 싫어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이해하기로 했다. "얘들아. 호연이는 바나나 우유가 정말 정말 싫대. 우리 반은 꼭 오전 중에 우유를 다 마시기로 약속했지만, 수요일만 호연이가 우유에 이름을 써서 집에 가지고 갈 수 있도록 이해해 주는 건 어떨까?"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어 씩씩댈 때면 해야 할 일이나 규칙을 이야기하며 다그치기보다 호연이의 감정에 조금 더 귀를 기울여 주기로 했다. "호연이는 지금 00을 하고 싶은데, 선생님이 00을 하라고 해서 속상하구나. 하지만 지금은 00을 해야 하는 시간이야. 그럼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대신 다 끝나고 00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줄게."



  여전히 호연이는 때때로 눈물을 그렁그렁하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혼자 화를 삭이는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호연이가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언제나 내가 하고 싶은 대로만 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그래도 호연이가 입은 괴물티셔츠가 너무 귀엽다고 칭찬해 주고, 얼마 전에 베트남에 놀러 갔던 이야기를 신나게 할 때면 귀를 기울여주고, 야심 차게 그린 웃긴 그림에 재미있다고 웃어준다. 오늘 점심시간에 그림이 그려진 보드게임의 그림들을 혼자 신기한 눈으로 관찰하는 너를 보면서 네게 학교라는 공간이 편안하고 즐거운 공간이기를 바랐다. 그래. 보드게임을 꼭 친구들과 옹기종기 하라는 법은 없지.



  너의 세계를 모두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네가 나와 다른 세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존중해 주기로 했다.


  아마 너도 선생님의 세계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는 않을까.



  호연이를 보면서 학부모 상담 때 종종 어머님들이 하는 질문이 와닿았다. '우리 아이가 학교에 잘 적응하고 있는지 궁금해요.'




호연이는 이제 교실에 잘 적응해나가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나도, 호연이에게 잘 적응해나가고 있는 것 같다.




**아이 이름은 가명을 사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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