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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 달 Aug 29. 2024

짜요짜요만큼의 용기

어떻게 한 번 말에서 듣는 법이 없니?

준희는 내가 우리 반에서 제일 먼저 외운 이름이다.

학기 초에 하루에도 몇 번을 그 애 이름을 불렀는지 모르겠다.

눈치도 빠르고 머리도 똑똑한 녀석이 분명한데 한 번을 말해서 말을 듣는 법이 없었다.



"준희야 읽던 책은 이제 집어넣고 수학책을 꺼내볼까?"

"준희야 학교에 오면 휴대폰은 가방에 넣어야지."

"준희야 수업시간에 큐브는 집어넣으렴."



"선생님 왜 준희는 한 번 말하면 안 들을까요?"


"그러게 말이야."



  준희는 거의 매번 수업시간에 책을 꺼내 읽고, 휴대폰을 목에 걸고 다니며 만지작 거리고, 수업 시간에 방해가 되는 말을 한다 거나 큐브를 꺼내 꼼지락 거렸다. 급식소에 줄을 서 있다가 식판을 들고 걸어가는 친구를 향해 발차기를 해 본다거나 교실에 있는 뾰족한 잎으로 친구를 살짝 찔러보기도 했다. 재미없어 보이는 활동을 할 때는 심드렁. 재밌어 보이는 활동을 할 때는 꼭 본인이 먼저.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내려갔다가 데리러 갈 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제멋대로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는 안하무인.



  미안하지만 그것이 준희에 대한 나의 첫인상이었다.



  점심시간 준희가 문득 눈에 들어온 그날도, 오전에만 몇 번을 화난 목소리로 그 애 이름을 불렀던 것 같다. 짜요짜요를 맛있게, 열심히 먹는 그 애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미운 애 떡 하나 더 주는 마음으로 준희를 불렀다.



"선생님 것도 먹을래?"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준희에게 짜요짜요를 건넬 때만 해도 내 행동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교실에 올라와 처음으로 내 옆에 다가와 재잘재잘 할아버지 이야기를 하는 너를 보며 미안해졌다. 그렇게 신이 나서 내게 자기 이야기를 하는 모습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혼내기만 하는 선생님이 얼마나 싫었을까.


  똑똑한 너에게 학교 공부가 썩 재미있지 않았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무조건 네가 교실에 맞춰지기만 바랬던 것 같기도 하다.


너와 영양가 없는 기싸움을 하면서.


너는 짜요짜요 하나에 내게 마음을 열어주는 어린 일뿐인데

나는 그동안 먼저 손을 건넬 짜요짜요만큼의 용기도 없었던 선생님이었구나 싶어 미안해졌다.






학부모 상담 때, 잔뜩 걱정하며 찾아온 어머님께 짜요짜요 이야기를 하며 말했다.


준희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고, 다정한 어른이고 싶다고.


  여전히 규칙을 지키지 않고 친구들을 괴롭힌다면 나는 준희를 혼낼 테지만 그래도 재잘재잘 주말에 있었던 이야기를 하고 싶은, 그런 어른이고 싶다고.


"그러니까 어머님, 제가 준희를 혼낸 날에도 그래도 선생님은 너를 사랑하고 아끼고 있다고 꼭 이야기해 주세요."



  요즘은 무서운 표정으로 준희를 부를 일이 거의 없어졌다.


  준희는 말썽꾸러기지만, 우리 반에서 제일 발표를 잘하고, 우리 반에서 제일 창의적이며, 우리 반에서 제일 재미있게 놀 줄 아는 학생이다.


  실수로 친구를 때렸다는 친구에게 '폭력은 실수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멋진 말을 해주고 오늘 본 책의 사자성어와 속담을 일상생활에 적절하게 사용하고는 뿌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너를 보며 폭풍칭찬을 하고는 웃었다. 너는 여전히 말썽꾸러기지만, 나는 너의 예쁨을 발견할 때마다 그래도 우리 준희는 정말 귀엽다며 아이들 앞에서 너를 칭찬한다.




내게 짜요짜요만큼의 용기가 없었다면,

우리는 조금 더 오랫동안 서로에게 괴로운 존재이지 않았을까.



내 마음의 여유가 없어 짜요짜요만큼의 용기도 없어지는 날

선생님을 그만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들 이름은 가명입니다. 글을 쓰는 순간, 이름으로 부르고 싶어 아무렇게나 지어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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