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보면 봄꽃이 떠올라
단정한 단발머리 양쪽을 토끼처럼 쫑긋 올려 묶고 다니는 지유는 말수는 적지만 생각이 깊고, 느리지만 착실한 친구다.
걱정이 많고 마음이 예쁜 그 애는 동그랗고 말간 얼굴에 꼬불꼬불 잔머리가 튀어나와 있는 귀여운 이마를 가지고 있다. 걱정스러운 눈을 깜박이며 질문을 하러 나올 때면 나는 그 귀여운 잔머리와 동그란 이마를 보며 이유 없이 기분이 좋아지곤 한다. 다행히 아이의 걱정은 대부분 정말로 별일 아니다.
조금 늦더라도 또박또박 예쁜 글씨로 알림장을 쓰고, 오늘 제출하지 못하더라도 최선을 다해 그림을 그리는 지유가 나는 좋다. 며칠 전에 수학 단원평가를 할 때도 시간 안에 반밖에 풀지 못했지만, 나는 넉넉한 시간을 주었다면 네가 더 잘했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다른 친구들보다 빨리 가지는 않더라도 너는 차분하고 착실하게 잘 따라올 것이다. 가만 너를 보고 있으면 과연 누구 하나 너와 다툴 친구가 있기는 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성격이 원만하고~'같은 미사여구는 너를 위한 말이구나.
지유를 떠올리면, 봄 꽃이 떠오른다.
교실에 가져다 놓은 예쁜 봄 꽃들이 피고 질 무렵 너는 가장 말이 많았다. 오늘 꽃봉오리가 얼마나 피었는지. 꽃 속이 어떻게 생겼는지. 노란 튤립의 얼마나 커졌는지. 천리향의 향기가 얼마나 좋은지. 너는 자주 들여다보고 우리에게 자주 꽃 소식을 알려주었다. 우리 반에서 빨간 튤립이 폈다는 것을 제일 먼저 알아차린 것도 너였다.
"선생님, 꽃을 가져와서 그려도 될까요?"
"그럼. 대신 조심해야 해."
꽃을 책상 위로 가져와 쉬는 시간에 관찰하고 그리던 네가 예뻐 사진을 찍었는데, 너무 잘 그려서 깜짝 놀랐다.
"어머님! 지유가 미술에 재능이 있나 봐요!" 팔불출 엄마처럼 호들갑을 떨며 지유가 꽃을 가져와 그림을 그리는 그 예쁜 풍경을 사진에 담아 학부모님께 보냈던 기억이 난다. (아니 세상에 2학년이 잎의 볼륨감과 꽃잎의 중첩을 너무도 정확하게 표현하지 않았던가! 오히려 어머님은 아이가 어렸을 때 미술학원에 다녔었다며 나의 호들갑을 잠재워주셨다.)
꽃을 보며 온전히 그 '좋아하는 감정'을 느낄 줄 알고, 내가 좋아하는 꽃이 피고 지는 그 변화를 물끄러미 관찰 줄 알고, 좋아하는 것을 그리고 표현하는 즐거움을 알고 있다니.
지유는 행복해지는 법을 벌써 알고 있는 아이 같았다.
좋겠다 너는.
좋겠다 너희 엄마는.
천천히 피어도 괜찮으니, 예쁘게 피어나렴.
**아이의 이름은 가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