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식기세척기의 근무환경에 대해
아침에 일찍 잠이 깼다. 주말엔 늘 늦잠을 잤었는데, 잠이 얇아져서 그런지 늦게 자도 일찍 눈이 떠지는 요즘이다. 멍하니 두 시간쯤 그 애 생각을 하다가 점심약속이 떠올랐다. 어제 예약해 놓은 빨래가 끝났다는 종료 알림음이 울렸다. 건조기를 돌리고 오랜만에 식기세척기를 사용해 보기로 했다. L이 없으니, 식기 세척기에 들어갈 그릇이라고는 텀블러 밖에 없어서 우리 집 식기 세척기는 2주일째 일이 없었다. 그동안 손으로만 씻어 어딘가 찝찝한 텀블러를 오늘만큼은 식기 세척기에 넣고 싶었다. 자리가 너무 남아서 찬장에 묵은 그릇들을 추가해 시작 버튼을 눌렀다. 아침의 우울이 언제 그랬냐는 듯, 제법 그럴듯한 일요일 아침이 되고 있었다.
그래, 네가 없어도 나는 살 수 있겠지.
언젠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거나 떠나거나 죽거나 해서 없어진다면 살 수 있겠냐는 질문에 네가 했던 대답이 떠오른다.
"살 수는 있겠지. 조금 재미없고, 힘들고 아파도 - 살 수는 있겠지."
다분히 이성적인 커플이라, "뭐라고? 진짜야?" 하고 뾰로통했다가도 "그래 맞아. 그렇겠지."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네. 그래도 그렇게 말하지는 말지. 며칠 전 주문한 식빵에 그와 함께 여행 가서 사 온 쨈과 언젠가 그가 집에서 가져온 치즈를 올려먹으며 생각했다. 냉장고에 들어있는 음식이 몇 안되지만 대부분 L의 손길이 닿아있었다. 그가 없으니 더욱이 음식을 해 먹을 일이 없어 우리 집 냉장고는 열고 닫는 일이 적어졌고 우리 집 식기 세척기는 지나치게 한가해졌다.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은 돌아가는 세탁기와 건조기가 식기세척기를 부러워할까 잠깐 상상해 본다. 월 2회 1시간씩만 일하다니. 꿀보직이네.
냉장고의 치즈 한 장까지 L이 사다 놓은 음식을 다 먹을 때쯤이면 나는 조금 더 괜찮아질까?
그러기엔 먹어 없어지는 음식물 같은 거 말고도 그의 흔적이 너무 많다.
그래도 오늘 아침엔 울지 않은 게 어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