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개새끼는 어떻게 한 번을 내게 연락하지 않을까
아침부터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왔다.
어제까지 내린 비가 땅을 차갑게 식혀주어서 그런 걸까.
유난히 여름을 싫어하던 네가 오늘 날씨를 좋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같은 날이라면 어디든 좋겠다 싶어서 몇 안 되는 친구들에게 연락을 해봤지만, 각자의 일정이 있어 함께할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누군가는 가족들과 나들이를 갔고, 누군가는 고향집에 갔고, 누군가는 이미 약속이 있었다. 서울 나들이를 간 친구들에게 영상통화가 걸려왔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내 생각이 났단다. "딱 네가 좋아할 풍경이야. 같이 오면 좋았을 텐데." 일주일을 빈틈없이 살고 있어서 정말 하루만큼은 쉬어보자 거절했던 것이 후회되었다. 아직 빈틈을 감당할 만큼 내 마음이 건강하지 못하다는 걸 간과한 것 같다. 쉬지 않고 걷지 않으면 주저앉아버릴 것 같은, 그런 위태함의 연속이다.
아무도 만나지 않을 예정이었지만, 예쁘게 차려입고 길을 나섰다. 마음이 초라하니 겉모습만큼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어폰을 끼고 책을 들고 샌드위치 하나를 사 먹은 뒤 집 앞 공원으로 나섰다. 그리고 공원 초입에서 그를 마주쳤다.
익숙한 발걸음. 익숙한 옷차림. 내가 좋아하던 그 사람.
아. 네가 왜 여기에.
어떻게 말해야 할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멈춰 섰다. 가슴이 두근댔다. 나에게 다가와 안아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그가 무슨 생각으로 여기까지 왔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잠깐 멈춰 서더니 천천히 걸어와 어깨에 손을 얹고는 "오랜만이네"라고 말하고 지나쳤다.
개새끼.
대체 자기 동네에서 차 타고 30분이나 떨어진 우리 동네 공원까지 와서 산책한 그의 속내가 궁금했다. 그와 반대방향으로 한 바퀴를 돌면서 다시 그가 나와 마주치기를. 나에게 말을 걸어주기를 바랐지만, 그는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마음이 복잡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헤어진 이후 단 한 번도 내 전화를 받지 않았던 그가 전화를 받았다. 그는 벌써 돌아가는 차 안이었다.
"우리 이야기 좀 할까?"
"아니. 미안. 내가 거기 가지 말았어야 했는데. 괜히 널 또 힘들게 한 것 같네."
"여기 와서 산책한 거 처음이야?"
"아니."
"왜 여기까지 온 거야?"
"그냥 날씨가 좋아서."
"나 사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잘 모르겠어. 우리 왜 헤어진 거야?"
"..."
그것 말고 무슨 말을 더했는지 모르겠다. 그는 여전히 담담했고, 나는 여전히 비참했다. 나는 날씨가 선선하고 좋아서 네 생각이 났다고 했고, 그는 날씨가 선선하고 좋아서 산책을 나왔다고 했다. 기분 좋게 산책을 나왔을 텐데, 내 마음을 혼란스럽게 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울었고 그는 별로 할 말이 없어 보였다.
나는 그 개새끼가 여전히 그립다.
씩씩하고 당당하고 아무렇지도 않았으면 좋겠는데, 사무치게 그가 보고 싶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정말이지 어찌할 줄 모르는 마음을 감당하기 어려워 울고 있다. 나는 매일을 그 애에게 연락하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누르며 참고 있는데 그 개새끼는 어떻게 한 번을 내게 연락하지 않을까.
그가 산책을 오는 까닭이 어쩌면 미련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놓이다가도
어쩌면 그 만의 방식으로 나를 정리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렸다.
그는 개새끼고
나는 여전히 그 개새끼를 그리워한다.
그 점이 너무 거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