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그가 그립지만, 이제 그래도 많이 괜찮아졌습니다.
사랑했던 사람과 헤어진 지 이제 3개월이 조금 넘었습니다.
이별[離別]을 국어사전에 찾아보니 '서로 갈리어 떨어짐.'이라고 쓰여있더라고요.
그가 떨어져 나간 자리가 그렇게도 아프고 허전하고 공허해서 견딜 수가 없었는데,
그래도 이제 많이 괜찮아진 것 같습니다.
여전히 그가 아주 그립지만, 그래도 예전만큼 많이 울지는 않거든요.
그동안 저는 정말로 많이 애썼습니다.
처음에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렇게 사랑했던 사람이 더 이상 저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가 없어서 그에게 정말 애처롭게 매달렸어요. 화도 내보고 쿨한 척 안녕을 고해 보기도 하고 또 집 앞까지 찾아가서 구질구질하게 매달려보기도 했습니다.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거냐는 질문에 답이 없는 그에게 그래도 떠나지 말라고 붙잡았던 기억이 나네요. 나를 다시 사랑하기까지 얼마나 오래 걸릴지 모르는 데 어떻게 그동안 너를 기다리게 하냐는 그의 말에, 다 괜찮다고 제발 나를 버리지 말라고 했어요.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붙잡아봐야 소용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때는 그만큼이나 제 마음이 절실했습니다. 그렇게 일주일쯤 지났을 때, 더 이상 찾아가도 만나주지 않고, 무시하기도 힘드니 카톡도 전화도 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어요.
이렇게 떼를 써봐야 아무것도 달라지는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는 어떻게든 이겨내 보려고 애썼습니다. 하고 있던 일들을 더 열심히 하고 새로운 운동을 배워보고 머리를 다듬고, 네일아트를 다시 하러 갔어요. 친구들을 만나기도 하고 짧은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려고 노력해보기도 하고 안 하던 요리를 해보기도 했습니다. 잠시라도 슬퍼질 겨를이 없게 스케줄표를 채우고 밤이면 지쳐 잠이 들 수밖에 없도록 바쁘게 살았습니다. 그래도 아침이면 눈물이 나고 저녁이면 그가 그리웠습니다. 음식도 입에 들어가지 않고 그 무엇도 즐겁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세 달이 지나도 그에게 먼저 연락이 오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가을이 되어 있었습니다. 아침공기에서 서늘한 가을냄새가 났습니다. 하늘이 파랗고 단풍이 곱게 들어 출근길이 무척 예쁘더군요. 그렇게, 끈적끈적한 우울감이 나를 바닥으로 끌어내리던 여름이 끝나있었습니다. 그가 곁을 떠난 이후, 온통 잿빛이던 세상이 그래도 색을 찾았구나 싶었습니다. 제가 조금이나 그 사람을 털어낼 수 있게 된 건, 아이러니하게도 그 무엇도 그 사람의 자리를 쉽게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다음이었습니다. 네. 내가 제일 좋아하던 사람이 그렇게 쉽게 대체될 리가 없죠. 가장 말이 잘 통하는 사람, 별 일 아니어도 같이 웃을 수 있는 사람, 일상을 행복하게 채워주던 사람, 나를 예뻐하고 사랑해 주던 사람. 취미생활이, 새로운 운동이, 외롭다고 만난 사람이, 가끔 만나던 친구들이- 그 자리를 대신할 수는 없더라고요. 무엇인가 나를 채워줄 것을 찾으려고 애쓸수록 더 그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고 더 외로워졌습니다. '그만하자. 애쓰지 말자.' 생각했을 때. 무엇도 그를 대신할 수 없음을 온전히 받아들였을 때. 그냥 조금 더 괜찮아졌습니다.
그리고 그제야 비로소- 남아있는 '내'가 보였습니다.
'내가 남아있잖아.' 그가 떠나고 내게 남아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6년 간 함께해 온 시간이 산산이 부서지는 기분이었거든요. 그런데, '내'가 남아있더라고요. 그와 만나는 동안 제게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대학원을 다녀왔고, 운전면허를 따서 이제는 능숙하게 운전하는 어엿한 드라이버가 되었습니다. 직장에서 업무를 많이 맡아보기도 했고, 근무지도 이동했습니다. 집을 사서 이사를 하고 취미활동을 열심히 하면서 종종 무대에 서기도 했습니다. 혼자서, 또는 그와 함께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떠나보냈습니다. 그 모든 순간 그가 함께여서 든든했고 행복했고 즐거웠지만, 생각해 보면 그가 없었어도 저는 그 모든 일을 해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힘들 때 저를 안아주고 격려해 주고 위로해 주었지만, 사실 논문을 쓴 것도 업무를 한 것도 집을 계약하고 노래와 춤을 연습하고 아버지를 간호하고 보내준 것도 저니까요.
그럼에도 저는 여전히 그가 그립습니다. 삶의 순간순간에 그가 문득 찾아옵니다. 밥을 먹을 때 산책을 할 때 책을 읽을 때 커피를 마실 때도요. 주말에는 날씨가 참 예뻐서 단풍구경을 했는데 지난가을 사진을 찍어주던 그가 생각났습니다. 제 사진이 늘 예쁠 수 있었던 건, 저를 예쁘게 봐주던 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걸 알아요. 사진이야말로 피사체를 사랑하는 사진 찍는 사람의 의도가 가장 잘 드러나는 결과물이니까요. 산책을 하는 내내 그가 그리웠습니다. 혹시 어딘가 그가 있지 않을까 남몰래 주위를 여러 번 둘러보았습니다. 꼬불꼬불한 산길을 운전할 때에는 그와 함께 여행했던 스페인의 어느 고산마을이 떠올랐습니다. 운전하기 어렵기로 악명 높은 그 길을 어렵게 운전해서 도착했을 때의 뿌듯함. 그 날 만난 바다 무지개 같은 거요. 그 바다 무지개는 인도네시아에서 본 활화산만큼이나 감동적이었는데, 어쩐지 올해는 좋은 일들만 가득할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이별이라니, 참 우습네요.
저는 많이 괜찮아졌습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그때 그 무지개 기억나냐고 메시지를 보내고 싶은 걸 한 번 더 꾹 참아보려고 합니다.
안녕? 오늘 꼬불꼬불한 산길을 운전했는데, 너랑 갔던 가라치코의 마스카마을과 그때 보았던 바다 무지개가 떠올랐어. 생전 처음 본 바다 무지개가 너무 신기하고 감동적이어서 올해는 좋은 일만 가득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우리가 헤어지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보고 싶어.
뭐. 아무리 사랑한다고 보고 싶다고 말해봐야 그의 마음에 닿지 않는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