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리히알렉산더보슈비츠<여행자>를 읽고
‘두려움 앞에서 인간은 나와 남을 구별하고픈 충동을 느낀다. 오늘 우리 사회는 ‘우리’라는 울타리와 그 너머에 있는 타인을 어느 정도나 구분 지으며 살아갈까. 타인에게 가해지는 부당함에 얼마만큼 무감각할까. 지쳐서 여행을 그만두려는 여행자는, 모든 것을 견디기 위해 생각을 그만둔 우리 사회의 유대인은 누구일까.’ – p.6-7
책을 읽으며 여행자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여행’이라는 단어 안에는 설렘과 환상, 비 일상성과 기쁨이 들어가 있는 단어로만 느껴졌다. 그러나 이 책에서 말하는 ‘여행자’는 자신이 살던 여느 때와 다름없던 일상이 무너져 내려 어쩔 수 없이 여행을 시작한 사람을 말한다. 독일 나치 시절 유대인들은 그저 영문도 모르고 강제 수용소에 넘겨졌고 그곳에서 많은 죽음을 당했다.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에서 말한 ‘무지’가 ‘무력武力’이 되는 순간을, 그리고 내가 가진 무의지가 가장 강력한 의지가 되는 그 순간을 이 책을 통해 뼈저리게 느꼈다. 과연 내가 그 상황이었다면 내 의지를 담은 목소리를 낼 수 있었을까, 아니 혹은 내 의지 자체가 있었을까, 더 나아가 내 의지가 유대인 혐오로 이어지지는 않았을까. 그들이 하는 모든 상황에 대해서 내가 의문을 품고 거부감을 가질 만한 이유나 동기가 있을지 조차 솔직히 확신이 안 선다.
인간은 두려움 앞에서 나약한 존재일 뿐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독일은 완전히 폐허가 되는 상황이었고 국가 자체가 흔들리는 과정에서 히틀러가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으로 등장한다. 이 곳에서 그는 아리아인의 그중에서도, 게르만족의 우월성을 주장하며 자신들과 다른 신념을 지닌 유대인을 몰살시키겠다는 공약을 내건다. 물론 이 공약 하나로 모든 것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그전부터 만연해 있던 유대인 혐오 사회의 분위기, 유대교와 기독교의 신념 차이로 인해 유럽 전역에 유대인 혐오 분위기가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것도 그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 당시의 독일의 한 국민이었다면 나는 과연 어떻게 행동했을까.
<여행자> 안에서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나는 유대인을 좋아하지도, 미워하지도 않아요. 관심이 없습니다. (…) 그들이 뭔가 부당한 일을 겪는다면 유감이긴 하지만 놀라지는 않습니다. 세상사가 다 그래요. 한쪽이 파산하면 다른 쪽은 성공하는 법입니다.” -p.30
주인공 질버만에게 집을 사려는 아리아인이 하는 말이다. 유대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체포되고 끌려가도 누구나 하나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그 사회의 분위기가 여실히 보이는 구절임이 틀림없다. 주인공 질버만은 유대인으로서 전쟁에도 참가했고, 독일에서 꽤나 성공한 사업가로서 ‘거의 완벽한’ 독일 국민에 가까운 존재다. 또한 그의 외모는 유대인의 특징이 거의 드러나지 않았기에 더욱 위태로운 ‘여행자’가 된다.
집을 팔기 위해 흥정을 하고 있던 그 와중에 집이 경찰에 의해 침입을 당하고, 자신의 가족들과도 한 순간에 뿔뿔이 흩어지고 만 질버만은 그 순간부터 여행자가 되는 것이다.
이미 유대인들이 잡혀가기 시작한 그 시점부터 정식적 이민 비자는 거의 막혔고, 불법 이민을 가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했지만, 그 마저도 엄청난 위험을 감수해야지만 허락될 수 있었던 그 분위기 안에서 질버만은 독일의 도시를 기차를 타고 끝없이, 끝없이 여행한다. 우리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이 ‘여행’이라는 단어이다. 내가 과연 의지를 가지고 이 여행을 하고 있는가, 혹은 사람들에게 내몰려 갈 곳이 없어 위험을 감수해가며 여행을 하는가. 책을 보는 내내 숨죽이고 항상 위험스러운 순간에 대비하는,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배신을 지켜보고, 자신이 이룬 많은 사업적 성과들이 무너져 내리는 질버만을 보고 나까지도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실제로 이 책을 쓴 울리히 알렉산더 보슈비츠는 저자의 소설의 배경인 1938년 박해 당시에는 이미 외국으로 망명한 상태였지만, 나치가 유럽 전역으로 세력을 넓힘에 따라 새로운 땅에 정착하지 못하고 쫓겨 다녔다는 점에서 자전적 성격을 띤다. 그렇기에 더 와 닿은 부분이 있다.
결국 소설은 질버만이 스스로 여행을 끝냄으로써 마무리되는데, 이것 역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는 더 이상 생각할 수 없어 생각을 끝내는 것이다. 그렇기에 여행은 길고도 아주 큰 불행한 생각이었으며 그 시절의 유대인들의 생각과 감정을 고스란히 나타낸다고도 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이와 같은 길고도 먼 여행을 하는 자들은 누구일까, 울타리를 치고 선을 그어 분리시키는 그 순간 그들은 여행을 시작했을 것이다.
또한 나 역시 선을 만든 사람들 중 일부가 아니었을까,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