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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iposa Sep 05. 2021

색(色)의 향연, 「해부학자」

해부학자 - 페데리코 안다아시

연극처럼 펼쳐지는 파노라마

공연예술 중, 스토리와 희곡이 있다. 스토리는 내용이고, 희곡은 형식이다. 즉 희곡은 스토리와 동일하지만, 무대 위에서 특정한 구조로 나타나는 스토리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래서 희곡의 경우에는 구조가 굉장히 중요하다. 중요한 부분을 편집 작업과 카메라의 시선으로 나타내는 영화와는 달리, 연극은 중요한 부분을 강조하고 부각할 수 없기 때문에 연극의 구조를 통해서 중요한 장면이나 자신이 담아내고 싶은 내용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은 마치 희곡(=연극)과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소재의 이야기가 있을 때, 작가가 나타내는 순서와 방식을 통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 작가의 주제의식을 나타내는 것이 희곡과 굉장히 유사했기 때문이다. 

표현하고자 하는 방식의 구조에 따라서 달라지는 ‘강조의 정도’는 이 소설 안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먼저 시간의 역순이 눈에 띈다. 처음에 소설을 시작할 때, 나는 이 소설의 주된 ‘발견’이 ‘비너스의 사랑’이라는 것을 이미 알 수 있었고, 마테오 콜롬보와 성이 같은 제노바 출신의 해군 제독 과의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적 ‘발견’의 필연성에 대해서도 서문을 통해 알게 되었다. 

물론 디테일하고 정교한 그 뒤의 내용은 점차 책의 뒤의 내용에서 알 수 있었지만, 대략적인 내용을 알게 됨으로써 느꼈던 이 책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특히 책을 읽다 보면 키워드의 정교함이 느껴진다. 까마귀, 삼위일체, 창녀 제조업자 등 소재를 더욱 잘 드러낼 수 있는 키워드를 설정하고, 그 안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감으로써 독자들은 책을 단순히 읽는 것이 아니라 키워드 별로 뭉쳐서 보다가, 결국 마지막엔 모든 퍼즐이 맞춰지듯 어우러지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마치 희곡(=연극)처럼 다른 책들과 구별되는 특이한 구조와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더욱 많은 표현들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페데리코 안다아시의 글 안에서 통통 튀는 자유로운 표현들은 더욱 이 구조와 잘 어울리며 그 속에서 중남미 문학의 정점을 맛볼 수 있었다.   


  

문화의 다양화된 시각

그렇다면 이제 이 책을 본격적으로 탐구해보자. 이 책 안에서 내가 관심 있게 보았던 주제가 하나 있었다. 바로 '마녀사냥(Witch Hunt)'이었다. 마녀사냥은 1450년부터 1750년에 이르는 기간에 유럽 전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마녀 술을 부린다는 혐의로 고소당하고, 재판을 받고, 처형되었던 사건이다. 

마녀사냥은 15세기 이후부터 시작되었는데, 당시 유럽 사회에서는 악마적 마법의 존재를 믿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크게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이 책에서도 나왔듯이 사람을 고치는 치료사(치료사들은 일반인들이 잘 알지 못하는 민간요법과 약초를 사용하여 치료행위를 하였기 때문에 농촌사회에서 담당했던 특별한 역할로 인해 마녀로 취급당한 주원인을 설명할 수 있다.)가 흑마법을 사용한다고 여겨지면 재판을 실행했던 것처럼 유럽 사회에서는 종교적인 이유로 많은 사람들을 불태우고, 또 살해한 것을 알 수 있다. 

마녀사냥의 경우 초기에는 희생자의 수가 적고 재판을 종교재판소에서 전담하였지만 그 이후 세속 법정이 주관하게 되면서 16세기 말부터 17세기에는 광기에 휩싸인 듯 많은 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된다. 또한 종교개혁 시기의 혼란스러움과 겹쳐 사람들은 말 그대로 광기 어린 자신들의 신념을 가지고 대학살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마녀사냥은 종교적인 이유를 계기로 이렇게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된 것일까?

 

당시 중세시대는 종교전쟁, 30년 전쟁, 전염병과 그리고 혼란스러운 경제 상황으로 인해 농촌 사회와 더불어 사회 전체가 위기에 빠진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이 모든 불행이 마법사(=남성 마녀)와 마녀에게서 발생한 불행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또한 여기서 주목해야 할 포인트는 바로 ‘여성’이다. 

여성주의 관점에서 마녀사냥을 해석한 대표적인 학자 바스토우의 주장에 의하면, 마녀사냥의 희생자가 여성이었던 원인은 ‘그들이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기독교 사회 여성 혐오 전통의 영향을 받아 당시 사회는 여성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사람들은 여성의 마음이 유약하여 욕구를 억제하지 못하기 때문에 쉽게 악마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역시 여성의 권리가 굉장히 낮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마녀’라고 분류되는 모든 여성들은 아주 처참한 방식으로 화형에 처하거나 처벌을 받는 것에서 더욱 강조된다. 


그렇다면 마테오 콜롬보에게 ‘비너스의 사랑’은 어떤 의미였을까? 또한 그에게 ‘해부’의 의미는 무엇이었으며 궁극적으로 그것을 통해 얻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먼저 마테오 콜롬보는 실존인물이자 혈액의 폐순환을 알아낸 아주 중요한 해부학자이다. 그러나 그의 위대한 업적 중 하나는, 여성의 클리토리스를 발견한 것이었는데 그는 이것을 『해부학에 관해』에 기록한다. 그러나 해부학의 사전 안에는 그가 발견한 여성의 클리토리스에 대한 내용은 전혀 적혀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앞서 살펴보았던 중세시대의 억압적인 분위기, 그리고 혹독한 검열에 의해 거부당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소설은 물론 페데리코 안다아시의 픽션화를 통해 만들어진 플롯이긴 하지만, 마테오 콜롬보에게 있어서 그의 위대한 ‘발견’은 사람들의 인정을 받지 못했고 그에게 굉장히 자부심 있었던 ‘발견’ 임을 유추할 수 있다. 

또한 소설 안에서 그의 ‘발견’과 운명은 두 여자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그가 사랑했던 여자 모나 소피아, 그리고 ‘비너스의 사랑’을 발견하게 한 이네스. 이 두 여자는 그에게 있어서 운명과 발견의 집합체인 것이다. 그러므로 마테오 콜롬보에게 ‘비너스의 사랑’은 그의 사랑을 쟁취할 수 있는 도구이기도 했을 것이며 그가 가지고 있는 무기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궁극적으로 그가 바랐던 것은 모나 소피아의 사랑이었지만, 죽어가는 그 과정에서도 모나 소피아는 그의 마음을 받지 않는다. 이네스를 통해 운명적으로 비너스의 사랑을 발견했고, 그가 여성의 클리토리스를 발견한 후 마지막까지 모나 소피아를 사랑했으나, 결국 결말은 비극이었던 것처럼 이 모든 과정은 그에게 있어 ‘해부’ 그 이상의 의미를 지녔을 것이라 생각한다.     



누구보다 위대했던마술적인 이야기를 마치며

“오, 나의 아메리카여. 나의 달콤한 신대륙이여!”라는 감탄문으로 시작되는 이 책은 보는 내내 굉장한 흡입력을 뽐낸다.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역순 구조와 그것을 맞춰가는 과정, 그리고 제삼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시선까지. 

평소에 보던 책과는 사뭇 달랐고 그로 인해 더욱 집중력 있게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앞서 말했던 색의 향연이라는 제목의 이유가 여기에 그대로 나타난다. 특히 책을 다 읽고 나서, 마테오 콜롬보가 실존 인물이었다는 것과 그가 저명한 해부학자이었음에도 다른 해부학자들보다 알려지지 않은 사실과 그의 발견이 온전하게 밝혀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이 책은 마테오 콜롬보라는 인물에 대한 픽션이 섞인 소설이기도 하지만, 더불어 인물과 함께 그 시대의 배경을 알 수 있는 소설이었다. 무엇보다 르네상스 시대, 그리고 중세의 유럽의 분위기를 이 소설을 통해서 생생히 느낄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었다. 또한 화려하고 도전적인 표현들을 통해서 독자들이 책을 읽는 내내 처음 느껴보는 신선함을 제공한다. 

이 책이 문학상에서 ‘인간 정신의 고매한 가치를 고양시키는 데 기여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거부당하고, ‘여성적인 쾌락의 발견을 재현한 불경스러운 소설’이라는 일부의 평가를 받은 것 역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 책 안에는 굉장히 사실적이며, 자극적인 어휘들이 섞여 있을뿐더러,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의 픽션이 들어가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또한 여성의 권리를 매우 낮게 표현함으로써 책을 읽는 내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 책에서 집중해야 할 것은, 이런 사실들로 말미암아 독자들에게 더 많은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앞서 말한 자극적인 표현들이 불편하고 신경 쓰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페데리코 안다아시는 이 책을 통해서 그런 점만을 강조한 것이 아닌, 마테오 콜롬보라는 인간을 표현하고자 했고 인간의 위대한 발견이 얼마나 숭고스러워질 수 있는지 말하고자 했으며 그 인물이 살아갔던 시대를 우리에게 보여줌으로써 자신이 나타내고자 하는 세계를 더욱 완벽히 제공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나에게 중남미 문학의 특징적인 면을 완벽히 가르쳐 준 소설이었다. 도전적이며 환상적이고, 비현실적이지만 지극히 현실적이다. 또한 아름다운 면 안에는 잔인할 정도로 참혹한 형상들이 숨겨져 있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 그리고 그 색들은 우리에게 처음 보는 세계를 열어주었고 숨겨져 있던 신대륙을 발견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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