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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쑥갓 Jan 10. 2023

문어(21.11.19)

삶은 문어




   친할머니께서는 전화를 빨리 끝내려 하신다. 원래 말이 없는 분이신가 의아하지만, 막상 찾아뵈면 많은 얘기를 들려주신다. 경로당 얘기부터 농사 얘기 하다못해 시시콜콜한 지인분들 얘기까지. 어째 다 잘 모르는 분들이고, 끼어들 틈도 안 주시고 말씀하시는 탓에 나는 '그러셨어요?' 내지는 감탄사로 맞장구쳐 드릴뿐이다. 그런 할머니신데도 전화할 때만 되면 어디 급한 일이 있으신지 통 길게 이어가지 않으려 하신다. 여느 때와 다를 것 없이 할머니는 서둘러 전화를 끝내셨고, 여느 때와 다를 것 없이 아버지께 할머니께서 이번에도 그러셨다고 전했다. 아버지는 여느 때와 다르게 할머니는 옛날 분이라 통화요금이 많이 나가는지 아신다고, 그래서 용건만 간단히 하시는 거라 말씀하셨다. 그런 할머니에 대해, 또 나의 과오에 대해 몇 자 적어보려 한다.


   언제부턴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할머니 댁에는 늘 문어가 있었다. 누구를 위해인지 정해져 있는, 냉동실 속 꾸깃꾸깃한 검은 봉다리에 다소곳 하게 들어있는 문어가 있었다. 손주가 오면 무엇이 예쁘다고 늘 문어를 내어주시는지. 어렸을 적에는 문어를 잘 먹었기에 달가웠지만. 커감에 따라 그다지 입에 맞지 않아 늘 사양하는 것도 고역이었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를 것 없이 할머니는 문어 먹냐고 여쭤보셨고, 여느 때와 다를 것 없이 괜찮다고 말씀드렸지만, 여느 때와 다르게 할머니께서는 옛날엔 참 좋아했었는데 하며 말문을 여셨다.


   외할머니의 손에 자란 탓에 어린 나에게 친할머니는 어려운 분이셨다. 더군다나 외가댁에서는 개 한 마리(개의 이름은 아롱이, 진주의 어미지만 밭에서 사라진 뒤 돌아오지 않았다.)도 키웠기에 시골에 내려가기만 하면 온통 외가댁에 언제 가는지만 궁금할 뿐이었다. 친가에 제 입으로 '갈래!'라 할 때는 사촌 형이 왔을 때뿐(이 때문에 외할머니께 상처를 드린 적이 있지만), 이외에는 가야 된다는 생각만 했지 자의로 가겠다 말한 적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친할머니께서는 한 가지 옛 이야기를 더 말씀해 주셨다.


 문어를 단순히 좋아하는게 아니라 문어에 사족을 못 썼다고 하셨다. 때문에 친할머니 댁에 문어가 있으면 가겠다고 했단다. 그때부터 할머니는 문어를 준비하셨다. 안 먹은 지 몇 년은 족히 넘었는데도, 문어가 있어야 손주 놈이 온다고 몇 년을 준비하셨단다. 명절에는 제사 음식이네하고 넘어갔지만, 명절이 아닐 때에 가도 늘 문어가 있었던 이유가 그거였다. 이제는 그런 거 없어도 할머니께 전화도 드리고, 잘만 찾아뵈는데도 문어를 준비하신다. 듣고 얼굴이 붉어졌다. 어렸다 핑계를 대기에는 당시 화자였던 내가 어린 것이지, 청자셨던 할머니께서는 어른이셨기에 부끄러웠다.


 그렇기에 휴가를 나가면 먼저 사천으로 가려 한다. px에서 산 홍삼 하나 손에 들고, 할머니께 문어 없이도 손주가 뵈러 왔노라 말씀드리려 한다. 아버지와 함께 오지 않아도, 사촌이 오지 않아도, 친할머니를 먼저 찾아올 수 있을 정도로 손주가 컸다고 말씀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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