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개쑥갓 Oct 25. 2022

나는 오늘 주파수를 들었다. (22.10.13)

이성과 낭만 사이에서


  몇 달 전, 유튜브에 xx 주파수라는 영상들이 인기 있다는 글을 봤었다. 복권 당첨되는 주파수, 살 빠지는 주파수 등 가짓수도 많았는데, 수많은 조회수와 댓글의 후기들에 놀람을 금치 못했다. 나랑 같은 세기에 사는 것이 맞는지 의문을 갖기도 했다. 자퇴하고 정치 채널 하나 나라사랑(순화해서) 채널 하나 주파수 채널 하나 해서 벌어먹고 살까 잠시 고민하다가 끝났다. 딱 그 정도였다.
   오늘 나도 주파수를 하나 봤다. 여느 때처럼 강의실에 8시 30분에 도착한 아침이었다. 가방을 놓고 눈을 뜨기 위해 자판기로 향했다. 900원짜리 맥스 한 캔. 고등학생 때는 너무 카페인 섭취만을 위한 음료라 제일 싫어했지만, 오늘 같은 날에는 최애가 된다. 한 모금 억지로 카페인을 삼켜도, 차마 영어를 읽을 상태가 아니라 유튜브를 켰다.
  '침착맨 만남 주파수'라 크게 써진 썸네일이 눈에 들어왔다. 이해가 시선을 따라가지 못했다. 뭔 채널에서 이런 걸 만드나 하고 채널을 둘러보았다. 이름을 보았을 때는 몰랐는데, 영상들을 보니 무슨 채널인지 기억났다. 플리를 침착맨과 밈을 섞어 올리는 채널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오늘의 밈은 주파수구나 하고 넘겼을 텐데, 아침의 피곤함이, 주파수의 호기심이 영상을 누르게 했다.
   예상치 못한 피아노 곡이 흘러나왔다. 잠깐 피아노 나오고 말 줄 알았는데, 주파수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여느 때와 같은 플리였다. 다른 주파수들은 어떨지 궁금해졌다. 주파수를 검색했다. 검색하기만 했는데, 저항력이 생기더라. 차마 들어볼 용기는 안 나고 사람들은 어떤 목적으로 주로 보나 조회수 순으로 설정했다.
   돈, 로또, 복권 같은 것들을 바랄 줄 알았다. 그런데, 순위 1등부터 10위까지에는 없었고, 운은 13위, 금전운이 18위였다. 장기 기억력 관련 주파수가 12위라는 다소 의외의 순위를 기록했다. 이제 1~11위 까지는 무엇이 있었냐가 중요해졌다. 6개는 숙면, 5개는 연애에 관한 주파수였다. 물론, 주파수라는 주제와 주 청취 층에 관한 특이성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결과는 상당히 놀라웠다.
   정말 중요한 게 뭘까. 다른 부가적인 것들보다 푹 잘 수 있는 밤과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을 모두가 원하는 게 아닐까. 사실 돌이켜보면, 돈이나 운들은 행복을 위한 부가적인 요소밖에 안 되는 데 말이야.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매일 6시 30분에 일어나 졸린 눈을 비비며 학교에 오는 걸까. 당장 오늘만 해도 너무 일어나기 싫어서 늦장 부렸는데 말이야. 그렇다고 해서 내일 1교시 수업을 포기하고 집에서 잠 한숨 더 자지는 않겠지만, 아쉬웠다.
   푹 잘 수 있는 밤도 연인도 없다. 주파수 순위 중 1,2등이 안됐으니 3,4등인 암기와 운이라도 좋아야겠다고 위로하며 시험공부를 하고 있다. 아무래도 사람이 공부하니까 미쳐가나 보다.

작가의 이전글 자주 쓰는 표현 (22.02.20, 22.02.2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