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돈으로 사기
블로그에도 몇 번 언급했으니 알 사람들은 아는 얘기겠지만 나는 탈모약을 먹는다. 가끔 이를 고백할 때면, 대게 "대체 네가 왜?"라는 말을 심심찮게 들을 정도로 머리숱은 비교적 많은 편이나, 탈모 약을 꾸준히 복용한지 이제 1년이 되어간다. 친구들의 의문에 나는 탈모약의 효과를 인용하여 답한다.
탈모약은 약이라는 이름과 조금 어색하게, 치료에 목적성을 두고 있지 않다. 탈모가 더 이상 진행하는 것을 막아주는데 효과를 보인다. 이 때문에 탈모가 진행한 이후에 복용을 시작하면 이전의 상태로의 복귀가 불가능하다. 때문에 탈모를 진단받고 탈모약을 복용하는 것은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것 때이다."를 세 번 마음에 새기는 것과 같다. 그렇지만 탈모는 소리 소문 없이 찾아오는 죽음과 같기에 남자는 누구나 탈모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인터넷에 조금만 찾아봐도 "저 탈모인가요?"라는 제목의 게시글이 쏟아져 나온다. 더군다나 나는 지성두피+몇 년간 유지한 장발 때문에 옛날부터 모발 하나하나에 막대한 의미 부여를 하곤 했다. 특히 군대에서는 물도 안 맞았고 스트레스 때문에 늘 불그스름한 두피로 살아서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또한 탈모의 주된 원인은 스트레스지만, 탈모가 있으면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모순을 깨닫고야 말았다. 동시에 머릿속에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진짜 너무 늦었다."라는 말이 스쳐 지나갔고, 탈모가 오기 전에 탈모약을 먹음으로써 탈모를 예방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런 나름의 이유를 구구절절하게 설명하다 보면 "돈 아깝지 않냐?"라는 공통된 질문이 하나 더 따라온다. 이때 나는 불안 비용이라는 단어를 언급하는데, 탈모라는 불안으로 모발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할 바에는 하루 350원으로 마음 편하게 사는 것이 낮다고 말한다. 언뜻 보면 이상해 보이지만, 실제로 내 주장을 듣고 탈모약을 먹기 시작한 친구들이 몇 있다. 이제 탈모약과 로또가 무슨 연관이 있는지 설명할 때이다. 로또는 탈모의 불안 비용과 정확히 반대의 역할을 수행한다.
로또가 한 주를 살아가게 해주는 동력으로 느낀다. 어린 왕자 속 여우의 "네가 4시에 오면 3시부터 행복해질 거야"처럼 로또를 일요일에 사면 토요일까지 행복한 상상으로 시간을 보낸다. 탈모가 없지만 혹시 모를 불안에 대한 비용으로 탈모약을 먹듯, 로또 단 돈 몇천 원으로 일주일을 두근거린다면 오히려 싼 게 아닐까. 이른바 한 주를 살게 해주는희망 비용이다. 물론 당첨되지 않은 토요일 밤은 슬픔으로 지새워야 할 테지만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