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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의 시간 - 002] ‘19-NINETEEN’

강도하의 실험적 서사로 기존 틀을 깨다

by 나무를심는사람
모두가 열아홉이 된 세계, 그 충격에서 시작되는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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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줄의 문장만으로도 독자를 사유의 소용돌이로 밀어 넣는 작품이 있다. 강도하의 신작 『19-NINETEEN』(이하 『19』)은 “세상의 모든 사람이 19세가 되었다”라는 파격적인 선언을 통해, 인간 존재와 사회 구조의 근본을 뒤흔드는 질문을 제기한다. 이 단순한 문장은 일반적인 호기심을 넘어 인간 정체성이 어떤 조건 위에서 성립되는지를 다시 묻는 철학적 장치이기도 하다. 특히 이번 작품은 웹툰 초기부터 연출·문법·장르의 경계를 흔들어온 강도하의 귀환이라는 점에서, 평범해 보이지 않는 설정이 더욱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작가는 실험적 서사와 사회적 은유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늘 독자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왔고, 이번에도 그 철학적 탐구 정신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음을 작품의 곳곳에서 알 수 있다.


2024년 12월 일본 픽코마에서 첫 선을 보인 『19』는 국내에서는 이례적으로 특정 플랫폼에 귀속되지 않은 비독점 방식으로 동시 공개되었다. 레진코믹스, 리디북스, 봄툰, 네이버 시리즈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 작품이 동시에 공개되면서, 독자는 플랫폼을 넘어 자유롭게 작품에 접근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전략은 단순한 배급 방식의 실험이 아니라, 다양한 질서와 혼란 속에서 새로운 구조를 찾아가는 강도하 작가의 작품 스타일과도 자연스럽게 맞물린다. 『19』는 서사뿐 아니라 유통 방식에서도 기존 틀을 넘어선, 다층적 구조의 실험을 병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부터 『19』가 펼쳐 보이는 세계관, 캐릭터, 서사 구조, 시각적 연출을 해석하면서 그 이면에 숨겨진 사회적·철학적 문제의식을 짚어기로 한다. ‘모두가 같은 육체를 갖는 세계’라는 설정이 무엇을 드러내고 무엇을 감추는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확장하며, 캐릭터들이 겪는 갈등과 변화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서술형 분석을 통해 통합적으로 살펴보는 과정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작품 감상을 정주행하고 나면 시즌1 전체가 하나의 프롤로그로 여겨지는 파격을 발견한다. 이러한 작가만의 독특한 서사 전략이 작품 전체에 어떤 효과를 가져오고 독자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평가하면서, 시즌2 이후의 확장 가능성 또한 함께 예측하기로 한다. 이번 글의 목적은 단순한 작품 소개가 아니라, 『19』를 통해 우리 시대의 구조적 문제와 인간성의 본질을 다시 바라볼 수 있는 비평적 시각을 제공하는 데 있다.


『19』는 한국이 아닌 일본에서 먼저 공개된 뒤, 2025년 한국에서 비독점 동시 연재 방식으로 공개된 강도하의 신작이자 복귀작이다. 장르는 SF와 미스터리, 그리고 사회파 서사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시즌1은 총 54화로 완결되었다. 작품의 내용은 어느 날 갑자기 지구 전체를 뒤덮은 빛을 마주한 이후 모든 인간의 신체가 ‘19세의 육체’로 변하는 파국적 상황에서 시작된다. 유아, 노인, 장애인을 포함해 모든 연령과 신체적 조건이 한순간에 사라지고, 사람들은 겉모습만 동일한 새로운 세계에 던져진다. 기존 사회 질서는 붕괴하고, 외형적 평등은 역설적으로 더 잔혹하고 원초적인 폭력을 불러오며, ‘치킨블러드’라는 결투 기반의 폭력적 시스템이 등장해 혼돈을 제도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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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유리는 빛의 사건 직후 실종된 할아버지를 찾기 위해 치킨블러드 시스템 속으로 뛰어든다. 시즌1은 유리가 이 세계를 이해하고, 결투 시스템에 직접 참여하기까지의 여정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이 과정에서 독자는 세계관의 구조, 등장 인물들의 내면, 리셋 이전의 단서들을 함께 탐색하게 되며, 유리의 성장을 따라가면서 점차 세계의 진실에 가까워진다.


서사·주제·캐릭터의 다층적 분석


1. ‘19세의 평등’이라는 세계관의 거대한 실험

『19』의 세계관은 인간 사회가 어떻게 구조화되어 있는지를 날카로운 질문으로 묻는다. 모두가 19세의 신체를 갖게 되는 리셋 이후의 세계는 겉으로는 완벽한 평등처럼 보인다. 병약한 이도, 노쇠한 이도, 성장하지 못한 아이도 모두 신체적으로 동일한 조건을 부여받는다. 그러나 그 평등은 단지 외피일 뿐이며, 인간은 외형이 같아져도 내면의 기억, 경험, 정신적 성숙도, 경제적 배경의 차이를 그대로 유지한다. 이 세계에서 ‘평등’은 실현되지 못한 이상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불평등을 낳는 계기가 된다.


리셋 이후 탄생한 치킨블러드 시스템은 이러한 역설의 상징적 구조다. 죽지 않는 신체라는 조건은 사람들로 하여금 폭력에 대한 두려움을 잃게 만들고,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하는 것이 더 이상 금기시되지 않는다. 폭력은 생존의 도구가 되고, 결투는 제도적으로 정당화된다. 이때 작품이 던지는 질문은 분명하다. 인간이 폭력을 절제하는 이유는 윤리적 판단 때문인가, 아니면 죽음이라는 생물학적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인가? 『19』는 이 질문을 극단적인 상황을 통해 재구성하며, 폭력과 권력의 원초적 구조를 다시 바라보게 한다.


이 세계에서는 모든 외형적 조건이 동일해졌기 때문에, 인간을 구분하는 기준은 보이지 않는 내면적 요소로 이동한다. 기억과 경험, 성격과 성숙도, 또는 욕망과 두려움 같은 심리적 조건이 새로운 위계 구조를 만들어낸다. 이는 현실 세계의 불평등 구조가 단순히 신체적 조건이 아니라 더 복잡한 사회적·문화적 관계망에 의해 형성된다는 사실을 은유적으로 드러내며, 『19』는 이러한 구조적 현실을 서사 속에서 다시 시험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2. 캐릭터들의 동기·관계·변화를 통한 정교한 드라마

유리는 리셋 이전까지는 가족의 보호 속에 살아온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실종은 그를 혼란 속으로 밀어 넣고, 동시에 주체적으로 세계에 맞설 힘을 깨우는 계기가 된다. 유리는 두려움과 혼란 속에서 점차 세계를 이해하고, 결투 시스템에 뛰어들기 위한 결심을 스스로 다지며 성장을 반복한다. 그의 여정은 단순한 능력 획득의 과정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감정과 내면을 이해하고 타인과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에서 비롯되는 감정적 성숙의 서사다.


리셋으로 인해 모두가 젊은 외형을 갖게 되었지만, 주변 인물들의 내면에는 그들의 실제 삶의 층위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젊어 보이는 얼굴 속에 수십 년의 연륜이 숨어 있을 수도 있고, 반대로 성인 신체를 가진 채 미성숙한 어린아이의 정신을 가진 인물도 있다. 이러한 간극은 자연스럽게 인간 관계의 충돌과 오해를 낳으며, 세계를 한층 복잡하고 입체적으로 만든다. 표정, 시선, 행동의 스타일과 말투 등 세밀한 표현들은 인물들의 정체성을 암시하며, 작가는 이 미묘한 균열을 섬세하게 시각화한다.


유리의 할아버지인 정노인은 작품의 중심에 놓인 미스터리이자 정체성의 역설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는 리셋 이후 젊어진 모습으로 이미 어딘가에서 등장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는데, 그 사실을 독자는 알아보지 못한 채 지나쳤을 수도 있고 애시당초 그런 일은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 상황 자체로 독자들은 작품의 서사 전개와 동시에 사건의 실마리가 될 것 같은 '정노인 찾기'에 자연스레 동참하게 되는 것이다. 육체는 젊어졌지만 기억과 삶의 이력은 그대로 남아 있는 존재의 등장은 “인간의 정체성은 외형에 의해 결정되는가, 아니면 기억과 관계가 본질인가?”라는 고민을 앞세우고, 정노인의 존재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정체성 문제의 핵심 축이자, 중요한 서사적 동력으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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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시즌1 전체가 프롤로그로 기능하는 실험적 구성

『19』의 시즌1은 전형적인 빠른 전개 방식과 대비되는 ‘느린 호흡’의 서사 구조를 택하고 있다. 이어지는 전개는 단숨에 긴장감을 폭발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세계관을 천천히 다져 올리며 독자가 이 낯선 세계의 이면을 자연스럽게 파악하도록 유도하는 방향으로 이뤄진다. 시즌1이 전체적으로 하나의 거대한 프롤로그처럼 느껴지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작가는 결투라는 극적인 액션 요소를 즉각적으로 소비하지 않고, 유리가 치킨블러드에 들어서기까지의 맥락을 세심하게 쌓아 올린다. 이러한 구성은 등장 인물 간의 관계나 감정의 층위를 충분히 발효시키며, 독자로 하여금 이 세계가 겉으로 보이는 단순한 혼돈의 장이 아니라, 작동 원리가 매우 복잡한 사회 실험의 장이라는 사실을 깊게 체감하도록 만든다.


유리가 처음 결투장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은 단순한 전환점이 아니라, 시즌1 전체의 정서적 곡선이 응축된 지점이다. 그 전까지는 가족을 잃은 혼란, 세계의 붕괴에 대한 불안, 그리고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막막함이 서사를 이끌었지만, 이 순간부터는 유리가 직접 행동의 주체로 자리 잡는 장면이 본격화된다. 이러한 구조 덕분에 시즌1은 캐릭터의 감정과 서사적 세계관이 서로 맞물려 성장하는 완만한 리듬을 형성하며, 이는 이후의 폭발적 전개에 필수적인 기반으로 작용한다.


또한 시즌1의 느린 흐름은 독자가 ‘19세의 몸을 얻은 세계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체감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제공한다. 등장인물들은 외형적으로는 19세의 육체를 갖고 있지만, 그들이 겪어 온 감정적·정서적 시간의 길이는 서로 다르다. 작가는 이러한 간극을 서사 곳곳에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설계하여, 독자로 하여금 인물들의 말투나 행동, 판단 너머에 놓인 ‘보이지 않는 나이’를 읽게 만든다. 이로써 리셋 세계는 단순히 생물학적 나이를 동일하게 만든 세계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불균형이 표면의 평등을 끊임없이 잠식하는 세계’로 확장된다.


결국 『19』의 서사 전략은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는 방식이다. 단숨에 결투 장면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왜 사람들이 결투장으로 향하게 되는지, 왜 폭력이 사회의 중심이 되었는지, 그리고 왜 주인공 유리는 그곳으로 스스로 들어가게 되는지를 차근차근 쌓아 올린다. 이는 단순한 연출 기법을 넘어, ‘서사의 원인’을 탐구하는 철학적 방식에 가깝다. 강도하 특유의 실험적 서사는 이렇게 인물의 감정과 세계의 구조를 병행해 구축하면서, 빠른 쾌락보다 깊은 몰입을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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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작화와 연출, 시각적 언어로 확장되는 철학적 세계

강도하의 작품은 언제나 그림의 힘이 서사와 함께 움직였다. 『19』에서도 그의 작화는 단순히 서사를 시각화하는 수준에 머물지 않고, 세계의 철학적 구조를 이미지로 구현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리셋 이전과 이후의 색채 대비는 세계가 단절되었다는 사실을 감각적으로 드러내며, 인물의 표정과 몸짓은 그들의 정신적 나이를 섬세하게 보여준다. 동일한 19세의 외형 속에서도 누군가는 노인처럼 부드럽고 느리며, 누군가는 아이처럼 서툴고 격렬하다. 이러한 차이는 작가의 치밀한 시선 처리를 통해 드러나며, 독자가 인물의 내면을 직관적으로 읽을 수 있도록 한다.


치킨블러드 장면의 연출은 특히 압도적이다. 세로 스크롤이라는 웹툰적 특성을 극대화해 움직임의 속도와 충격을 가시화하고, 슬로 모션과 클로즈업의 반복은 결투 장면 너머 감정의 파동까지 전달한다. 이는 단순한 액션 만화의 연출을 넘어, 폭력이라는 요소가 이 세계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시각적으로 설명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폭력은 단순한 공격적 행위가 아니라, 사람들이 새로운 질서를 이해하고 체득하는 근본적인 언어로 그려진다.


5. 작품의 실험과 완성도 사이의 균형

『19』는 창작자가 가진 실험 정신과 서사적 통찰력이 절묘하게 결합된 작품이다. 외형적 조건을 모두 동일하게 만든 세계는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발상이지만, 그 발상을 사회적·철학적 탐구로 확장해낸다는 점에서 매우 독창적이다. 작가는 평등과 불평등, 폭력과 권력의 구조, 그리고 정체성이라는 인간의 근본 문제를 서사 속에 녹여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액션 장면이나 캐릭터 중심의 드라마 속에서도 계속해서 존재감을 드러내며, 독자가 단순히 이야기의 진행만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그러나 작품의 느린 전개나 다소 생소한 작가적 구어체는 일부 독자에게 진입 장벽이 되기도 한다. 많은 정보가 축적되는 세계관 중심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집중력을 요구하는 부분이 존재하기도 한다. 이는 작품의 본질적 실험성과도 연결되어 있어 비판하기 어려운 지점이지만, 대중적 호흡과 표현 양식에 익숙한 독자들에게는 다소 무겁게 다가올 수 있다. 그럼에도 이 느린 리듬은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작품의 의미를 더욱 깊게 만드는 기반으로 작용한다.


실험과 통찰이 공존하는 강도하식 서사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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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NINETEEN』은 단순히 강도하의 복귀작이라는 사실을 넘어, 웹툰이라는 매체가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점에 놓인 작품이다. 세계의 근본 구조를 바꾸는 사건을 중심에 두고, 인간이 어떻게 새로운 사회 질서를 만들어 가는지를 섬세하게 추적하는 방식은 지금까지 어떤 웹툰에서도 보기 어려웠던 실험적 시도다. 시즌1이 거대한 프롤로그처럼 기능한다는 사실은 일부 독자에게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는 곧 다가올 시즌2 이후의 폭발적 전개를 위한 철저한 준비 과정이자, 작가가 구축하고자 하는 세계의 깊이를 보여주는 통찰의 한 방식이다.


유리의 여정은 단순한 모험이 아니라, 상실을 극복해 주체성을 회복하는 성장의 궤적이며, 치킨블러드라는 폭력 시스템은 인간 사회가 가진 내면의 그림자를 드러내는 장치다. 세계가 표면적으로는 평등해 보일지라도, 그 안에서 인간은 여전히 서로 다른 조건과 기억 속에서 살아간다. 이러한 불균형은 곧 인물 간의 갈등으로 이어지고, 작품은 그 갈등을 통해 ‘정체성은 무엇으로 구성되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다시 제기한다.


『19』는 단순한 엔터테인먼트가 아니라, 독자가 스스로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철학적 텍스트에 가깝다. 폭력과 평등, 기억과 정체성, 성장과 상실이라는 거대한 주제들이 곳곳에 스며 있으며, 이러한 주제들은 시즌2 이후 더욱 구체적인 형태로 독자 앞에 드러날 것이다.


만약 독자가 단순한 스릴이나 액션 이상의, 인간과 사회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을 찾고 있다면 『19』는 매우 적절한 선택이다. 서사적 흥미와 철학적 깊이가 공존하는 이런 작품은 흔하지 않으며, 강도하의 서사적 실험은 앞으로도 웹툰이라는 매체가 나아갈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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