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하고 여유로운 발리 뜨갈랑랑부근의 멋진 힐링 공간
발리에 와서 한 달에 한 번씩 숙소를 바꾸며 지내고 있어요. 9월에 체크인할 네 번째 숙소를 구글맵으로 찾아보다 그 동네에 멋져보이는 카페가 있어 그랩바이크(오도바이)를 앱으로 불러 부아앙 바람을 가르며 달려갔습니다. 우붓 윗동네 뜨갈랑랑 Rice field terrace 계단식 논과 가깝고 관광객이 없어 한적하고 조용한 그 동네에 다다르자 코끝에 와닿는 공기부터 달랐어요. 무성한 코털 속에 보금자리를 만들어 살고 있는 상상의 코털요정이 행복하다고 외치는 것 같았어요. 매연대신 상큼한 풀내음과 청량한 나무냄새, 미세하지만 향기로운 흙냄새가 발리의 산들바람을 타고 들어와 기관지를 맑고 깨끗하게 만들어줬어요. 7월에 머물던 숙소는 매연이 심한 도로와 우붓센터에서 가까워 비염이 다시 스멀스멀 도지는 중이었고 제주도에서만큼 중증은 아니지만 반갑지 않은 노란색 물질이 코를 풀면 매일 나오는 악성 비염 환자에게 맑은 공기는 무엇보다 중요한데 이사 갈 동네의 공기가 싱그러워 다행이었어요.
바이크에서 내리자 심한 길치인 저는 또 헤매기 시작해 폰을 꺼내 구글맵에 의지하려는데 어디선가 청아한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헬로"
구원의 목소리였어요. 두리번거리던 저를 불러 세운 안내프론트의 그녀에게 아카샤를 찾는다고 하자 여기가 바로 아카샤라며 빌라를 찾는지 아니면 식당을 찾는지 물었어요. 식당이라 하자 오른쪽으로 들어오라며 상냥히 안내해 줘 커다란 눈이 맑고 시원한 그녀를 따라 들어갔어요. 예상보다 럭셔리하고 드넓은 식당은 아침이라 손님이 저 혼자뿐이었고 멋진 인테리어와 평화로운 경치에 눈의 감각이 환해지고 기분이 몽글몽글 들뜨기 시작했어요. 벼를 베고 물만 남은 탁 트인 논에 오밀조밀 다닥다닥 붙어 떠있는 귀여운 개구리밥과 파파야빛 지붕집들, 건강한 야자나무, 흐리지만 구름이 풍성한 하늘을 바라보니 속세의 찌든 때까지 말끔히 씻겨나가며 힐링이 시작됐습니다.
주문한 코코넛과 비건 아이스크림이 나왔을 때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어요. 코코넛 뚜껑이 로맨틱한 하트모양이었기 때문이에요! 내 사랑 코코넛이 이렇게나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타나다니 역시 어디든 예술적인 감각이 충만해 감격스러운 발리입니다. 언젠가 라디오에서 들은 얘기론 발리 우붓에선 결혼적령기의 남자가 나무 숟가락을 만들어 사랑하는 여자에게 건네며 청혼을 하는 전통이 있다고 해요. 예술적 감각이 흘러넘치고 손재주 많은 발리사람들이 많은 줄은 알고 있었지만 직접 나무를 깎아 숟가락을 만들어 결혼해 달라고 하다니 정말이지 낭만적이고 소박하며 아름다운 전통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핸드메이드 숟가락을 선물 받고 남자가 마음에 썩 들지 않더라도 그 정성을 생각해서 결혼해 줬을 마음 착한 여자들이 존재했을지도 모르겠어요.
코코넛열매 안에 든 물을 마시기 위해 무겁고 단단한 코코넛 윗동을 날카로운 칼로 자르는 작업은 생각보다 보통 일이 아닙니다. 지난 4월에 들른 누사페니다 섬에서 찌는 듯한 더위를 피해 들어간 가게에서 코코넛을 시켰을 때 즉석에서 바로 코코넛을 도끼만 한 칼로 묘기 부리듯 잘라내는 아주머니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었어요. 보는 사람 간담이 서늘해질 만큼 무시무시한 칼쇼였어요. 저러다 손이라도 다치면 큰일 나는데.. 조마조마한 마음에 무사히 코코넛 자르시라고 아주머니의 안전을 위해 속으로 기도했어요. 고도의 몰입과 집중력으로 칼질하던 대담한 아낙의 손놀림을 떠올리며 눈앞의 코코넛을 바라보니 이 귀여운 하트 뚜껑을 섬세한 손길로 새로이 탄생시킨 분께 절로 고개가 숙여졌어요. 윗동을 쳐내는 일도 힘든 노동인데 잘라낸 윗동을 하트모양으로 조각해 구멍 내는 훌륭한 작업을 해내신 분은 도대체 어떤 분일까 궁금해졌습니다. 작은 일에 감동받고 두 손 모아 감격하기 좋아하는 누군가가 이 작은 하트모양에 기분이 한없이 들뜨고 행복해져 그림까지 그리게 되리라는 걸 그분은 알고 계실까요?
아름다운 대상이나 물질적 효용으로부터 행복을 끌어내려면, 그전에 우선 좀 더 중요한 감정적 또는 심리적 요구들을 충족시키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런 요구들 중에는 이해에 대한 요구, 사랑, 표현, 존경에 대한 요구가 있다. 따라서 중요한 인간관계속에 흥건하게 고여있는 몰이해와 원한이 갑자기 드러나면 우리의 마음은 화려한 열대의 정원과 해변의 매혹적인 목조 오두막을 즐기려고 하지 않는다. 아니, 즐길 수가 없다. -알랭 드 보통 Alain de Botton <여행의 기술 The Art of Travel>중에서
음악가는 음악을 만들고, 화가는 그림을 그리고, 시인은 시를 써야만 궁극적인 행복을 얻을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의 본성에 진실해야 한다. 이것이 자아실현의 욕구다. -에이브러햄. H. 매슬로
감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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