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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웬 Mar 05. 2021

아내에게 사기를 당했다

책 읽기를 좋아한다던 그녀가 말입니다.

"이건 말이 안 됩니다. 이건 사기입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당시 해설 위원으로 활동했던 차두리 선수는 조별리그 세 번째 경기인 스위스 전 오프사이드 판정 때 이렇게 외쳤다. 오심 논란이 있긴 했지만 경기는 그대로 진행되었고 그 결과 한국 대표팀은 앞서 있었던 두 경기의 호성적에도 불구하고 탈락을 했다. 당시 TV 중계를 보던 나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외쳤다.

'두리야, 형이 한마디만 할게. 사기는 내가 당한 거 같아.'


꿈에 그리던 여자를 만났습니다

요즘 표현으로 치자면 그녀와 썸을 탈 무렵, 가족관계나 종교, 전공 같은 기본적인 호구 조사가 끝나고 취미는 무엇인지 혼자 있을 때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지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다. 그녀는 가끔 친구를 만나 커피를 마시거나 영화를 보기도 하고 별 다른 약속이 없어 집에서 쉴 때엔 인근 책 대여점에서 책을 빌려 와서 읽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작은 키와 깡마른 몸매, 볼 품 없는 외모 등 그때까지 나를 주저하게 만들던 그 모든 조건들이 순식간에 내 머릿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책과 영화, 그리고 커피를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것만 같았다.


그렇게 조금씩 서로에게 마음을 열어가던 어느 날, 그녀로부터 받은 메일 한 통은 내 마음을 더욱 확신에 차게 만들었다. 분위기 있는 BGM이 깔린 상태에서 글이 한 줄씩 위로 올라가는 형태의 음악 메일(일명 뮤직 메일)이 그 당시 유행이었는데 그녀가 내게 음악 메일을 보냈던 것이다. 애절한 바이올린 선율과 함께 시작된 안재욱의 '친구'라는 노래가 잔잔히 깔리면서 시작된 <당신은 친구가 있나요?>라는 제목의 글은 내 마음을 흔들어 놓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한 편의 문학작품을 읽은 그 날 나는 이 사람과 남은 인생을 함께 하겠노라 마음을 굳혔다.


피해자는 있으나 가해자는 없을 뿐이고

연애 과정 중에 우여곡절이 조금 있긴 했지만 몇 년 후 그녀는 나의 아내가 되었고 우리는 작은 아파트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대부분의 신혼부부가 그렇듯 우리 부부도 처음 6개월 정도는 상대방의 단점마저도 충분히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안고 살았다. 하지만 그 기간은 생각보다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명절 연휴를 앞둔 어느 날, 손님이 뜸한 연휴 기간 동안 가게에서 읽을 책을 빌리러 간다던 아내가 쇼핑백 한가득 순정만화책을 들고 온 것이 논란의 시작이었다. 소설이나 에세이 몇 권 정도 빌려올 것을 상상했던 나는 아내가 바닥에 늘어놓은 수십 권의 만화책들을 보고 실소를 금치 못했다.


무슨 대단한 보물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완결판을 구해 왔노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아내를 향해 한마디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람 참, 수준 낮아서 어디 같이 살겠나."

"수준이 낮다니? 전국의 만화 작가들이 그 말 들으면 뭐라고 생각하겠어?"

아내는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아니, 그런 뜻이 아니고....."


그렇게 시작된 말싸움은 급기야 과거의 일까지 거슬러 올라가 번졌다.

"자기, 책 좋아한다더니 이런 책 얘기한 거였어? 나는 문학소녀인 줄 알았네. 아 그리고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예전에 나한테 보낸 메일은 기억 나? 지금 곰곰이 생각해보니 도저히 자기가 쓴 글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아서 그래. 그거 자기가 쓴 거 맞아?"

"그거? 그냥 인터넷에 떠도는 글 복사해서 붙여 넣기 한 건데."


"내 그럴 줄 알았다. 이거 완전 사기네 사기."

"사기라니? 자기 혼자 상상하고 결론 내놓고는 무슨 사기래? 언제 그 글 내가 썼다고 말한 적 있나? 자기는 늘 그런 식이야. 혼자 생각하기만 하고 자기 생각 못 따라가면 사람 무시하고 말이야."


듣고 보니 아내의 말은 틀린 게 하나도 없었다. 아내는 책을 좋아한다고 했고 좋은 글이 눈에 띄어 그걸 내게 보냈을 뿐이었다. 나 혼자 입이 찢어지도록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확대 해석을 했고 상상 속의 인물 하나를 만들어낸 것이었다. 내가 속은 것은 맞는데 속인 사람은 없는 이 상황을 어찌 받아들여야 할까? 어설프게 공격을 들어갔다가 강한 역공을 당한 셈이었다.


누가 내 눈을 흐리게 했는가?

결혼이란 이상형의 배우자를 만나서 하는 것이 아니고 적령기에 들어섰을 때 만나는 여러 사람들 중 한 사람에게 최대한 자신의 이상형을 끼워 맞춰서 하는 거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 말인 즉 흔히 말하는 '눈에 콩깍지가 씌워진 상태'에서 주변 사람들이 뜯어말려도 고집을 부리며 하는 것이 결혼이라는 것인데 결과적으로는 내가 그 주장을 완벽히 증명한 꼴이 되어 버렸다.


누구나 그렇듯 나도 한때는 배우자를 고르는 조건이 꽤 까다로웠다. 무슨 자신감에서 근거한 것이었는지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그 조건이 100가지는 가뿐히 넘을 정도로 많았었다. 키와 몸무게, 헤어스타일과 같은 외모를 따지는 것은 기본이었고 지역 가요제 정도는 우습게 씹어 드실 정도의 가창력과 최소 1~2개 정도의 악기를 연주할 수 있는 실력의 음악적 재능을 갖추기를 바랐다. 게다가 자판기에서 커피 뽑듯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감동적인 글을 뽑아낼 수 있는 감성을 겸비하기까지 바랐으니 그런 사람을 찾아 헤매다가 결국 시간에 쫓겨 판단력이 흐려진 것이었다. 그런 판단을 하고 선택한 것에 대한 책임은 내가 져야지 누구를 탓하겠는가.



요즘 들어 아내가 가끔씩 묻곤 한다.

"당신은 다음 세상에서도 나랑 다시 결혼할 거야?"

그때마다 나는 항상 같은 대답을 한다.

"당연한 걸 왜 묻고 그래? 제정신이면 당신 같은 사람 절대 안 만나지."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말이 있다. 이 글을 읽는 이들 중에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분이 계시다면 부디 신중히 판단하고 선택하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눈'이라는 두 개의 창문에 잔뜩 끼어 있는 성에를 꼭 제거하란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나처럼 가해자가 존재하지 않는 사기를 당할 수도 있다.


나는 아내가 책이든 뭐든 편식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젊은 시절 아내는 심각할 정도로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아내가 예전과는 달리 만화책보다는 소설책을 읽는 횟수가 늘어났고 흥행성 위주의 영화만 보지 않고 작품성 있는 영화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런 아내의 노력(?)이 고맙기는 한데 나는 아직도 뭔가 손해를 보며 사는 느낌이다.


옛말에 이르기를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는데 나는 왜 그토록 서둘렀을까? 평소 신중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내가 왜 그랬을까?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누군가는 그게 인연이라고 하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것을 운명이라고도 했다. 과연 그 말이 맞는지는 좀 더 두고 볼 일이다.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날 사건 이후 나는 뒤늦게 만화책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고, 안재욱의 '친구'라는 노래는 지금까지 내게 금지곡으로 지정되어 있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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