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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삭 Feb 17. 2023

마트 냉동 코너처럼 차가운 세상, 뱃속까지 얼어붙을 때

필요한 건 바로 순대국밥

뜨거운 걸 호호 불어 꼭꼭 씹어 삼킬 때면 마치 화로에 던져진 고구마가 된 듯이 온몸이 순식간에 익어 버린다. 따뜻한 차를 호호 불어 마실 때 차분히 퍼지는 따뜻함과는 달리 이 ‘국밥 기운’은 맹렬한 기세로 전신에 퍼진다.


뜨거운 걸 잘 먹는다. 자랑은 아니다. 뜨거운 음식을 충분히 식히지 않고 삼키는 행동이 건강에 좋지는 않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전문적인 의학 지식이 없더라도 특정 행동이 몸에 안 좋다는 사실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 일단 그 행동이 무언가 짜릿하고 중독적인 느낌을 선사한다면 필히 한 번 더 고민해봐야 한다. 예를 들면 담배, 술, 남의 험담, 12시간 동안 누워 유튜브 보기 등이 있다. 애석하게도 펄펄 끓는 무언가를 목구멍으로 넘기는 일 역시 너무도 짜릿하다. 그 펄펄 끓는 무언가가 맵기까지 하면 금상첨화다. 원래 나는 불닭 볶음면을 츄파춥스처럼 편안하게 먹어치우고 국밥에는 무조건 다진 양념을 추가하는 부류였지만 최근에는 좀 자제하고 있다. 직장인이 된 후 가장 먼저 얻은 것이 바로 식도염과 소화불량이므로.


어제는 뚝배기에 담긴 용암, 아니 순대국밥을 먹다가 입천장을 홀라당 데었다. 뚝배기처럼 말도 안 되게 뜨겁고 잘 식지도 않는 물건을 수백 개씩 가지고 있는 회사 근처 식당들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장소일 것이다. 전날 과음을 한 것도 아닌데 아침부터 이상하게 속이 허하고 기력이 없는 날이면 나는 자발적으로 그 위험한 장소에 방문하길 즐긴다. 혹자는 '시원하다'라고 명명하기도 하는, 용암처럼 뜨거운 국물만이 줄 수 있는 어떤 든든함이 찾으러. 뜨거운 걸 호호 불어 꼭꼭 씹어 삼킬 때면 마치 난로에 던져진 고구마가 된 듯이 온몸이 순식간에 익어 버린다. 따뜻한 차를 호호 불어 마실 때 차분히 퍼지는 따뜻함과는 달리 이 ‘국밥 기운’은 맹렬한 기세로 전신에 퍼진다. 게다가 주문 후 5분 이내로 음식이 차려지는 진정한 패스트푸드이기도 하니, 성격 급한 한국인이 국밥과 더불어 살아가는 건 운명이다.


뜨거운 국물에 대한 나의 사랑은 어린 시절부터 한결같았다. 엄마가 끓여주던 칼칼한 콩나물국을 두 그릇씩 뚝딱 비워내곤 했으니까. 특별한 재료가 들어간 것도 아닌데 그렇게 중독적일 수가 없었다. 숙취도 해장도 몰랐던 나이에 뭐가 그렇게 개운했던지, 국물이 식을 때마다 다시 데워 오는 정성까지 보이며 뜨겁게 식사를 마무리했다. 아무래도 술꾼의 유전자는 그때부터 발현된 걸지도 모른다. 마치 영화배우 황정민 씨의 술톤 얼굴처럼 맨 정신일 때조차 사람을 얼큰해 보이게 만드는 나의 홍조는 뜨거운 국물과 더불어 시작되었던 건지…


나는 원래도 멀티 태스킹이 잘 안 되는 사람이라 식사 도중 말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닌데, 국밥을 먹을 때 특히 심하다. 국밥집에서만큼은 맞은편에 누가 앉아 있는지도 별로 중요하지 않다. 식기 전에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평소보다 마음이 조급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일단 식사를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나와 국밥 둘만의 시간. 지옥불에서 방금 건져 올린 것 같은 건더기들을 씹다가 입천장을 데지 않게 조심하면서, 손끝 발끝까지 퍼지는 따뜻한 기운에 온몸이 노곤해진다. 식사를 마무리한 뒤 등 뒤로 흐르는 땀 한 방울을 느끼며 스테인리스 물컵에 담긴 생수를 들이켜면 완벽한 마무리다. 그렇게 일주일 치 ‘국밥 기운’을 충전하고 나면 다시금 차가운 세상으로 뛰어들 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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