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이 쏜살같이 지나 '그 시기'가 왔다. 3월 말에서 5월 초, 꽃을 본다는 핑계로 놀러 나가지 않으면 괜히 손해 보는 기분이 드는 시기.
“꽃이 싱싱한 상태로 참 오래가네. 침대맡에 두니까 기분 좋다.”
얼마 전 꽃을 선물해 준 친구와 실없는 메시지를 주고받다 잠들었는데, 오늘 아침에 일어나 보니 침대맡에 꽃잎이 눈물처럼 떨어져 있었다. 누구한테 머리채라도 잡힌 것처럼 분홍색 꽃잎이 한 움큼이나 떨어졌는데 가습기에서 나온 수증기까지 더해지는 바람에 약간은 축축하고 쓸쓸한 풍경이었다. 간밤에 방 안에 비라도 온 것 같네. 꽃이 이렇게 조용히 지고 있는 줄 알았으면 어제 물이라도 갈아주고 잘 걸. 떨어진 꽃잎을 그러모아 종량제 쓰레기봉투에 넣으면서 생각한다. 나는 식물을 보살피는 데에는 영 소질이 없어서 물을 갈아줬다고 한들 별 소용은 없었겠지만, 죄책감이라도 좀 덜어볼 수 있지 않았을까. 어젯밤은 모든 게 생기 넘치는 봄 같기만 해서 꽃잎이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 내고 있었다는 건 짐작도 하지 못하고 눈치 없이 잠든 것이다.
일 년이 쏜살같이 지나 '그 시기'가 왔다. 3월 말에서 5월 초, 꽃을 본다는 핑계로 놀러 나가지 않으면 괜히 손해 보는 기분이 드는 시기. 문 밖으로 한 발짝만 나서도 바로 눈에 걸리는 게 꽃나무요 새싹이겠지만, 남들은 다 놀러 다니고 나만 일하는 것처럼 말도 안 되는 질투심이 샘솟는 시기다. 올해는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되면서 봄바람을 더욱 공격적으로 느끼고 있다. 달력 어플을 열어 주말 일정을 확인하고 미세먼지가 심하지 않으면 집 근처 공원에라도 나가 볼까 고민한다. 분명 사람 많을 텐데. 사람 많은 건 싫은데. 하지만 지금 공원에 피어난 꽃들도 어쩌면 꽃잎을 간신히 붙잡고 있는 걸지도 몰라. 제 때 보러 가주지 않으면 오늘 아침에 마주친 것처럼 쓸쓸한 꽃잎 무덤만 마주한 채로 내년을 기약해야겠지. 아무래도 미세먼지에 대한 걱정과 복잡한 인파에 대한 거부감보다는 쓸쓸한 걸 보기 싫은 본능이 이겼다.
겨울 내내 챙겨 다녔던 싸늘한 무표정이 괜히 어색하고 쑥스러워 입꼬리를 올려 본다. 꽃샘추위 눈치를 보느라 며칠째 어정쩡하게 걸어 두었던 패딩은 이제 확실히 정리해 넣을 때가 된 것 같다. 밤바람은 아직 춥고, 환절기에 어김없이 찾아오는 알러지성 비염 덕분에 눈물 콧물 쏟느라 정신은 없고, 대부분의 시간을 네모난 콘크리트 건물 안에서 보내는 것도 여전할 테지만, 봄은 봄이다. 이 문장을 쓰는 와중에도 꽃잎이 또 하나 툭 떨어진다. 어째 봄이 져 가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는 느낌이라 마음이 조급해진다. 제철 음식은 먹을 수 있을 때 많이 먹고 제철 꽃은 볼 수 있을 때 많이 봐 둬야지. 제철 음식은 살 안 찐다. 그리고 제철 꽃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