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방이 되어버린 엄마의 늙은 집
친정집은 오빠네 가족과 우리 가족 모두가 자유롭게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간다.
엄마는 우리 집과 오빠의 집 비밀번호를 모르지만 엄마 아빠집은 우리에게는 언제나 오픈하우스다.
내가 스무 살이 되던 해 우리 집은 방이 네 개짜리 집으로 이사를 했다. 할머니를 집으로 모셔야 했기에 방이 네 개인 집이 필요했다.
나는 오빠가 있는 막내지만 여자가 짐이 더 많다는 엄마의 의견에 따라 네 개의 방중에 두 번째로 큰 방을 차지했다.
당시 50평이 넘는 우리 집은 내게 은근한 자랑이었다. 또래 친구의 누구의 집을 가봐도 우리 집처럼 멋진 집은 없었다.
축구를 해도 될 만큼 드넓은 거실과 번쩍번쩍한 가구들. 최신 인테리어로 마감된 우리 집이 참 좋았다. 대단지 아파트에 처음 살아보는 난 모든 게 신기했다.
대학을 마치고 사회인이 되었다.
할머니는 그 사이 돌아가셨다.
나와 나의 친오빠는 30대 초반에 결혼을 했다. 그 집에는 엄마와 아빠 둘이 살게 되었고 주인이 없는 방이 세 개가 되었다.
엄마아빠는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손자 둘을 봤다.
조카와 아들은 세 살 터울이다. 오빠네집과 우리 집은 20평대 작은 아파트였기 때문에 큰 장난감을 사거나 집에 들어가지 않는 모든 아이용품들을 엄마집에 가져다 놓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할머니집은 아이들이 뛰노는 알록달록한 놀이방이 되어버렸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 사춘기를 지나는 아이들은 둘이 만나면 어색한지 멀뚱멀뚱한 사이가 됐다.
그 사이 집도 많이 늙었다.
그 멋져 보이던 집은 이제는 촌스러운 인테리어가 되어있었고 반짝반짝하던 가구도 모두 낡아버려 누가 봐도 이 집은 할머니집이었다.
결혼을 하며 최신 인테리어로 장식한 나의 집보다 많이 넓을뿐 엄마집은 20년간 볼품 없게 변했다.
"니들 결혼 할 때쯤 집을 좀 고쳐야 했는데.."
"이제라도 하면 되잖아!"
"이제 와서 뭘..."
아마 이 집을 인테리어 하려면 적어도 1억 이상의 돈이 들 것이다.
집안 곳곳에는 아이들의 흔적이 남아있다.
아이의 키를 표시한 자국이 선명하다. 키를 기록하는 건 아직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아이들이 키가 계속 크고 있기 때문이다. 기록을 하는 시기는 점점 뜸해지고 있지만 갈 때마다 아이들은 키를 재고 날짜를 적어둔다. 아이들이 쓰던 레고와 장난감들이 아직 남아있다. 지금은 두 아이 모두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지만.
작년에 내가 12살 차이로 다시 또 아들을 출산했다. 엄마집에 우리 집보다 큰 매트를 깔고 아기의자와 미끄럼틀을 설치해 뒀다.
엄마는 "뭐야. 끝난 줄 알았더니 이제 다시 시작이야?" 라며 웃는다.
아이는 형아들이 가지고 놀던 10년이 넘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할머니 집은 앞으로 몇 년간은 다시 또 알록달록한 놀이방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