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우울증이 데려온 공황발작과 해리성 기억상실
처음으로 정신과 상담을 고려한 건 7년 전이다. 첫째 아이를 낳고 육아우울증이 심하게 왔다. 내 세계만 갇히고 멈춘 것 같은 답답함과 아이를 키우면서 순간적으로 올라오는 어린시절 상처들, 겪어왔던 외상 사건들이 공황발작과 일시적인 해리성 기억상실 등 다양한 형태로 예고없이 찾아왔다. 하지만 치료는 엄두가 안났다. 정신과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다기보다는 전적으로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출산과 동시에 시작된 외벌이와 살고 있던 전셋집에 보증금 사기를 당하면서 우리 집은 경제적으로 폭삭 내려앉았다. 한 회기에 10만원이 넘는 치료비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나는 그래도 방법을 찾아보고 싶어서 구에서 운영하는 정신보건센터를 찾아갔다. 10문항 정도 되는 간단한 심리 검사를 서면으로 진행했다. 문항에 체크된 내 답변을 본 담당자가 나는 중증이 아니어서 무료 상담을 지원해줄 수 없다고 했다.
밑바닥난 의욕을 겨우 붙들어매고 심리지원센터를 검색했다. 다행이 집 근처에 서서울심리지원센터가 있었다. 그 곳에서 처음으로 심리 상담이란 걸 받아봤다. 기본 4회기의 심리상담은 나름 만족스러웠지만 신청자가 많아 회기를 연장할 수 없었다.
나는 매일 밤 예닐곱가지의 악몽을 꾸었고, 30분마다 깨다 잠들다를 반복했다. 마지막 꿈에서 깼을 때는 심장이 너무 쿵쾅거려 다시 잠에 들 수 없었다. 컨디션 난조는 낮에 예민함으로 지속되었고, 온 종일 함께 집에 붙어있는 아이가 자꾸 미워졌다. 상담심리 전공하며 들은 건 많아가지고 내 감정을 최대한 누르고 아이를 일관되게 대하려고 무지막지하게 애를 썼는데, 그게 또 병이 됐다. 그와중에 둘째를 임신했다.
2020년 겨울, 둘째 출산일을 석 달 앞두고 과감하게 서울생활을 정리했다. 코로나가 급격하게 확산되면서 모든 것이 셧다운 되었던 시기였다. 곰팡이 피는 깡통전셋집에 박혀서 두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었다. 시모부님이 계시는 김천으로 갔다. 이듬해 봄 3월 아이를 낳고 벚꽃 만발하던 날, 처음으로 정신과를 찾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