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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유 Feb 16. 2024

불안에 멱살 잡힌 밤과 낮

압도하는 슬픔으로 찾아오는 악몽


압도하는 공포에서 깨는 순간과 압도하는 슬픔으로 깨는 순간이 있다. 슬픔이 곧 공포일 때가 대부분이지만.


사랑하고 소중한 게 많아질수록 아직 오지 않을, 그러나 언젠가는 올, 언제 올지 알 수 없는 상실이 너무 두렵다.


남편 느린을 만나기 전까지는 사실 죽음이 그리 두렵지 않았다. 이미 내 삶은 밑바닥이었고 잃을 것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무모하게 몸을 던지는 일들이 많았다. 위험상황에 자발적으로 찾아가는 무의식적 자살시도도 있었다. 내가 아픈 건 아무렇지 않았던,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던 시간들에는 그랬다.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점점 사랑이 깊어질수록, 아이를 낳고 경험하지 못했던 사랑을 배워갈수록 이상하게 두려움이 커진다. 마음이 건강할 때는 괜찮다가도 불안이 엄습하는 날이면 이들을 잃을까 봐 노심초사한다. 분리불안도 커진다. 이런 날이면 꼭 이별의 꿈을 꾼다.


이전까지의 악몽에서는 주로 누군가에게 쫓기거나, 뱀을 만나거나 (나는 어렸을 때부터 뱀공포증이 있다.) 옷이 발가벗져 지고, 큰 수치를 당하거나 살해당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모골이 송연해진 채 소리를 지르며 깼다.


그런데 이별의 꿈은 걷잡을 수 없는 슬픔으로 깬다. 아이를 잃어버리는 꿈, 남편과 아이를 두고 먼저 세상을 떠나는 꿈, 슬퍼하는 남편과 아들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꿈. 꿈속에서 나는 미어진 가슴을 붙잡고 꺼이꺼이 울다 깬다.


새벽 두 시에 깼던 어느 날에는 수용소에 갇히는 꿈을 꿨다. 그곳에서 겪는 폭력의 공포도 컸지만 다른 수감자들과 줄 세워져 건너편 건물로 가는 이동하는 길에

만난 남편과 엄마를 찾으며 울부짖는 아이의 얼굴을 보고 달려가려 해도 갈 수 없는, 엄청 애써보았지만 묶여있는 몸을 자각하며 통곡하는 그 순간, 꿈에서 깼다. 끝까지 거부하던 신내림을 받고 무당이 되어 가족을 떠나야만 하는 운명에 방황하다 깨기도.


각기 다른 꿈속에서 비논리적으로 등장하는 반복되는 이미지와 오브제들이 있다. 옛 교회, 학교, 같은 사람 등 여전히 남은 트라우마의 흔적들이 있다. 하지만 해석할 수 없는 것들이 더 많다. 현실처럼.


나아졌다가도 다시 아프고,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살다가도 예상치 않은 시간과 장소에서 사고처럼 찾아오는 것들. 그럴 때면 무기력해진다. 기도를 하고, 상담을 받고, 치유를 위해 찾아 나섰던 여러 방법들, 시간들이 무색해지는 순간들이 있다.


불안,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에 멱살 잡힌 채로 끌려다니는 이 수용소에서 언제쯤 해방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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