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장애 항우울제 부작용 2. 무욕증
항우울제 복용 3개월이 넘어가자 서서히 줄어들었던 성욕이 정말 뚝, 떨어졌다. 사라졌다. 연애 때도, 신혼 초에도, 임신 중에도, 출산 후에도 스킨십 욕구는 남편보다 내가 훨씬 더 컸는데 살면서 이렇게 욕구가 느껴지지 않는 것이 처음이라 신기할 정도였다.
항우울제는 우울감을 조절하기 위해 성욕을 포함한 모든 욕구들을 미리 채워둔 상태로 뇌가 인식하게 만들어 무욕증이 생길 수 있다는 의사의 말이 처음에는 잘 이해가 안 되었다. 욕구를 없애는 게 아니라 미리 채운다니. 어쨌든 성욕감퇴는 정상적인 반응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이 무욕증이 2년째 지속되고 있다는 거다. 처음에 남편은 치료를 받는 내 상황을 잘 알아주고 이해해 줬다. 매번 먼저 잠이 드는 내게 가끔씩 서운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건 성욕 때문이 아니라, 일찍 자버리느라 남은 집안일을 다 남편이 독박 쓴 이유가 컸다. 그런데 최근 남편이 진지하게 힘들다고 말했다. 물론 관계를 아예 하지 않는 것은 아닌데 근본적으로 내가 원하지 않는 걸 아는데 자신의 필요를 드러내는 게 죄책감이 들고 그러다 보니 온전히 즐기지도 못하고. 또 섹스 주기가 너무 길어져서 힘들다는 것이다.
나는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고, 그저 성욕만 없어졌다. 하지만 남편을 사랑하기에 남편의 욕구를 채워주고 싶은 마음도 크다. 그래서 노력도 한다. 막상 시작하면 과정에서는 나도 오르가즘도 느끼고, 즐거울 때도 있다. 시작할 마음이 없다는 게 큰 난관일 뿐이지.
최근 남편과 육퇴 후 맥주 한잔씩 하며 드라마 'LTNS'를 봤다. 영끌족 섹스리스 부부가 생활고에 시달리다 불륜 커플 추적해서 돈 뜯어내는 이야기인데, 사실 그 이상의 서사가 담겨있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한편으로는 우리 부부도 남편이 먼저 나를 쓰다듬지도 않고, 요구도 하지 않는다면 남편조차 나와의 관계를 원하지 않는 날이 와버리면 우린 진짜 섹스리스 부부가 되리라 씁쓸한 확신이 든다. 이러는 와중에 나는 또 남편이 나를 원하지 않는 상황이 올까 봐 두렵기도 하다. '나를 계속 사랑해 달라고!! 나를 계속 원하라고!! 그런데 내가 피곤하면 할 수 없는 거야!' 내가 이렇게 이기적이다.
난 여전히 약을 매일 잘 챙겨 먹으며 일도 열심히 한다. 그런데 일상의 아주 큰 변화나 불안 상황이 있는 것도 아닌데 꽤 자주 불안하고 그럴 때면 악몽의 주기도 짧아진다. 의사는 악몽을 꾸고 나도 그 내용을 다시 복기하지 말라고 조언했는데 꿈의 내용을 장기기억으로 가져갈수록 치료효과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아니 근데 내가 의지적으로 기억하는 게 아니라 그냥 기억이 계속 나는 걸 어떻게 하지..
가끔은 내가 자면서도 엉엉 울어서 남편이 날 흔들어 깨운다. 공포에 각성된 나를 꼭 안고 등을 토닥여 줄 때, 남편 가슴팍에 코를 묻고 울다가 고개를 들어 입을 맞출 때 아이러니하게도 악몽이 나를 적극적으로 방해하는 그때 섹스를 하고 싶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