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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유 Feb 24. 2024

공평함에 대한 강박

처음으로 돈을 내고 심리상담을 받다 1


정신과약을 복용한 지 반년이 넘어갈 무렵, 이제는 돈도 안정적으로 벌고 있으니 제대로 된 심리상담을 받아보고 싶었다. 회사 근처에 있는 심리상담센터에 예약을 하고 찾아갔다. 아주 오랜만에 MMPI와 문장완성검사를 받았다. 마음이 들떴다. 


하지만 초반 회기에는 '이게 잘 되고 있는 건가' 의구심이 많이 들었다. 상담사가 나를 이름 대신 자꾸 '어머님'이라고 부르는 것도 거슬렸고, 내 얘기보다는 자신이 살아왔던 이야기와 나에 대해 충고하는 시간이 길어져서 지루하기도 했다. 난 선결제한 5회기까지만 상담을 받고 그만둬야겠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4회기가 끝난 날 밤에 상담사에게 문자가 날아왔다. 내가 쓴 기사들 잘 읽어봤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상담 내내 내 삶을 이해받지 못하는 것 같아 답답함이 있었는데 상담사도 내 심정을 알아차린 것 같았다. 당시 항우울제 용량을 줄인 지 3주째 되던 날로 기분조절 문제로 힘들 때였다. 이전에는 그냥 넘어갈 법도 한 일에 괜스레 짜증이 나고, 새로 입사한 동료를 교육하는 과정에서도 천천히 기다려주는 마음보다는 답답함이 차오를 때가 많았다. 물론 겉으로 표현을 하지 않았지만, 동료가 상처받지 않고 격려를 받으면서 일했으면 좋겠어서 도리어 과장되어 칭찬을 한 것들이 내 에너지를 더 소진시켰다. 서로에게 좋지 않을 행동을 난 왜 힘들어하면서까지 하고 있는 걸까 싶었다. 


마지막이라고 마음먹은 5회기 상담 날, 아침에 첫째 아이가 등원하는데 빨리빨리 준비하자고 짜증 섞인 톤으로 재촉한 게 하루종일 마음에 남았다. 등원버스를 기다리면서 아이에게 '엄마가 아침에  자꾸 빨리빨리 하라고 짜증내서 미안해. 등원버스를 놓칠까 봐 걱정되는 마음에 그랬어. 앞으로는 재촉하지 않을게' 사과했다.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기분 좋게 버스에 올랐지만 나는 내내 마음에 남았다. 요즘, 왜 이렇게 기분 조절이 안 되는 걸까 한숨을 쉬며 상담센터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상담사에게 물었다. 

"약을 줄여서 그런 걸까요? 아니면 너무 더워서 에너지가 없어서 그런 걸까요?"

가만히 듣던 상담사가 말했다. 

"충분히 짜증 날 만한 상황들이었네요"



맞다. 요 며칠 업무량도 너무 많았고, 스트레스받을법한 내부적인 사건들도 많았다. 나는 지칠만 해서 지쳤던 거다. 당연한 감정을 죄책감으로 연결시키는 패턴은 사실 아주 오래, 깊이 내 몸에 각인된 습관이다. 하지만 내가 힘든 상황에서도 나는 너무 타인에게 맞추려 하는 성향이 있다. 아이에게도, 동료에게도. 그 사이에 나는 소진되어 버린다. 나는 없어져버리는 것.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에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내적 요소들이 작용한다. 첫 번 째는 어렸을 때 사랑을 충분히 받아보지 못한 것. 그래서 내가 누려도 될 것들을 미루고 늘 타인의 눈치를 보고 맞추려고 드는 것. 두 번 째는 기질적인 '연민'. 공감능력. 세 번 째는 공평함에 대한 강박이다. 


상담사가 물었다. 

'슬아 씨는 어디서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을까요?' 

나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사실 남편은 내가 요청하면 언제든 너그럽게 이해해 주는 사람이다. 어쩔 때는 먼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라고 나에게 권하기도 한다. 하지만 난 늘 망설인다. 내가 그 시간을 갖는 동안 남편이 너무 힘들지 않을까. 그래서 집으로 돌아갔을 때 후폭풍이 더 크지 않을까. 아이들이 나를 너무 찾지는 않을까. 이런 염려와 미안함이 주된 감정이지만, 마음 한쪽에는 '공평함'에 대한 강박이 움직이고 있다. 


내가 이만큼 쉬면, 남편에게도 똑같이 그 시간을 줘야 할 것 같은 마음. 내가 설거지를 하면 남편이 청소를 하고 이렇게 공평하게 뭔가를 분담해야 덜 억울할 것 같은 나의 쪼잔한 마음. 남편은 이런 걸 전혀 재지 않는 사람인데 나 혼자서 기준을 만들고 마치 연차를 아꼈다가 모아서 쓰듯이 그에게 최대한 배려를 하고 내 쉼을 가지지 않다가 한 번에 몰아 써야 할 것만 같은 마음. 그리고 남편이 '내가 너한테 이렇게 해줬잖아' 하고 생색내면서 나를 궁지에 몰 것 같은 두려움이 내 기저에 깔려있었다. 


남편은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닌데도. 기본적인 사람에 대한 불신이 있다. 어렸을 적 나의 주된 감정은 '억울함'이었다. 무조건 언니말이 옳다고 판단하는 부모님. 그래서 언니 잘못일 때도 결국 내 잘못이 되었을 때의 억울함. 상대방의 순수한 호의인 줄 알았는데 제대로 된 보답을 하지 않았다고 따돌림을 당했을 때의 억울함. 내가 노력해도 인정해주지 않고 도리어 비교하는 사람들에 대한 상처. 그리고 불공평한 대우. 


나는 내가 누리면 누군가 피해를 입고, 누군가 이득을 얻으면 내가 피해를 입는다는 생각으로 인생을 제로썸 게임처럼 아슬아슬하게 살아온 것 같다. 상담사는 어린 시절 경험도 분명 요인이 되지만 내 직업 특성상 불합리한 일을 겪은 억울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취재하고, 또 해결돼야 할 일들이 전혀 해결되지 않는 무력감을 많이 느껴왔을 거라고. 그런 것들이 축적되어 지금의 내 상황을 강화시켰을 수도 있다고 말해줬다.  


내가 누리면, 다른 사람도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한다. 인생은 제로썸 게임이 아니니까. 난 충분히 내가 누릴 수 있는 상황에서도, 타인의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나중에 책 잡힐 것 같은 두려움에 물러서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호의를 호의로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연습이 필요할 것 같다. 


그리고 늘 남편이 말하듯 나는 100프로를 할 수 있을 때에도 150%를 써버리고 번아웃 하는 성격이다. 그래서 120%을 해냈는데도 나중에 상대방에게 실망스러운 말을 듣는 타입. 상담사는 내가 사람들을 그렇게 길들인 것이라고 말한다. 나에 대한 기준을 너무 높게 만든 거라고. 


"슬아 씨. 뻔뻔해지세요!"

약을 증량하지 말고 한주만 이런 연습을 하면서 살아보자는 상담사에 제안에 하마터면 왈칵, 눈물을 쏟을 뻔했다. 우는 대신 다음 5회기 상담비용을 추가 결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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