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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쉼표로 통과하는 포털

『그림에 머물다 마음을 씁니다』

by 애니마리아


미술관에 가본 지가 오래다. 가끔 가보고 싶지만 이런저런 핑계로 가 볼 엄두를 못 낸 것도 사실이다. 내가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좀 더 예술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의 전유물이라는 편견도 있었다. 예술에 다가가기 힘들어하는 데에는 이처럼 막연한 두려움과 편견이 가로막는 경우가 있다.



11월이 얼마 남지 않은 초겨울, 얼마 남지 않은 거리의 나뭇잎이 더욱 애잔해 보였다. 그래서 그림과 에세이가 담긴 작품, 『그림에 머물다 마음을 씁니다』(북도슨트, 2025년 11월)의 가제본이 더욱 눈에 띄었다. 오헨리의 『마지막 잎새』처럼 나의 시선이 이 책의 출간 소식에 마음이 자꾸 머물렀다. 왠지 허전한 마음과 여기저기 아픈 통증을 이 책이 달래줄 것 같았다.



책은 19세기에서 20세기에 살았던 화가 5인과 작품들이 한 축이 되고, 다시 5인의 작가가 그림과 관련된 감상으로 다른 축을 담당하며 마치 날실과 씨실의 정교한 양탄자처럼 이야기를 들려준다. 프리다, 클림트, 고흐, 밀레 그리고 우리 전통 민화와 같은 그림까지 한 번쯤은 들어보거나 보았을 법한 화가나 그림의 이미지가 나온다. 흔히 대표작이라 언급되는 그림보다는 유명하지는 않지만 작가를 그 어떤 그림보다 잘 대변하고 삶의 의미가 담겨 있는 예술품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작품집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유명한 고전을 다룬 영화의 전형적인 주인공이 아닌, 개성 있고 연기력이 뛰어난 조연을 접한 것 같아서 오히려 좋았다.



5명의 유명한 작가의 이름이 각각 큰 장으로 통일성 있게 나열된 제목에서도 위트가 느껴졌다. '프리다에 머물다 마음을 씁니다'라는 장이 그다음에는 '클림트에 머물다 마음을 씁니다'로 구분되며 있는 방식이다. 한 작가를 다루면서도 하위 목록에는 5인의 작가가 각자의 감상으로 독립된 제목의 에세이를 풀어놓는다. 다양한 의견을 담은 소제목을 보기만 해도 내용이 궁금해졌다. 가제본이라 각 장에 하나의 에피소드만 볼 수 있었지만 그 하나의 에피소드에서도 깊고 신비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미술 에세이의 가제본인데도 마치 '마트료시카'라는 러시아 인형을 하나하나 열어보는 느낌이라 재미있었다.



이 책의 특징은 작품을 열거하듯 단순히 소개로만 끝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5개의 에피소드처럼 다른 작가의 감상이 끝나면 새로운 장이 시작되기 전에 '미술 에세이 쓰는 법'이 이어져 독자의 참여를 유도한다. 그림을 감상하고 자유롭게 생각을 정리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고 말해주는 것처럼 말이다.



각 장에 제목과 함께 해당 화가의 작품이 한 면을 차지하고 있어 나처럼 초보 독자 및 관람객을 위한 마중물 역할을 한다. 또한 해당 그림이 보관되어 있는 장소가 표기되어 있는데 주로 그림의 소재지로 미술관에 한번 가보고 싶은 마음이 일기도 한다. 단지, 그림의 제작 연도도 같이 표기되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다. 소설처럼 작가의 인생 굴곡이나 역사적 배경에 따라 그림의 화풍이나 변화가 좀 더 섬세하게 파악될 때가 있기 때문이다. 가령 고흐의 <붓꽃>에 1889년이라는 연도가 추가되었다면 어땠을까. 그가 말년에 그린 그림이라던가 1890년에 사망한 고흐가 정신병원에 있는 시기라 힘들었겠다는 짐작으로 이해를 돕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나는 그림과 작가에 대해 세세히 알고 있지 못하기에 단순히 소수 의견일지도 모르겠다.



다양한 화풍에 다양한 화가, 그들의 그림을 진지한 눈으로 바라본 글 작가들의 글은 한 화가를 중심으로 수많은 샛강으로 뻗어나간다. 그분들의 글을 읽다 보면 같은 그림을 두고도 경험을 떠올리기도 하고 기억을 되살리기도 한다. 그림과 작가, 그 모두를 바라보는 인간의 감성이 합해져서 새롭게 승화된 문학과 예술의 앙상블을 보는 듯하다. 그림을 통해 화가의 시선과 마음에 다가가 편견을 깨기도 하고 삶과 죽음의 이미지를 새로이 다지기도 한다. '부서진 자신의 육체를 그릴 수 있다는 건, 약한 일이 아니라 강한 일이었다'(20쪽)는 말에 공감하기도 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영혼과 마주하며 쓴 작가님의 시를 보고 미소를 짓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지켜본 독자로서 또 다른 깨달음을 얻기도 했다. '때로는 나의 아픔, 고통, 내게 남아 있는 흉터까지도 마주 보려는 용기 또한 나를 사랑하는 행위'일 수 있음을 말이다.



그림에서 죽음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얻는 기회를 발견하기도 했다. 고흐의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을 통해 '죽음은 두려움이 아니라 자신이 돌아가야 할 여정'(93쪽)이라는 사연 덕분이다. 언젠가 돌아갈 것을 꿈꾸며 빛나는 별을 표현한 고흐의 그림을 다시 보노라면 방황하는 예술가가 아니라 누구보다도 삶을 사랑하고 자신에게 솔직했던 사람의 노력이 잔잔하게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기차를 타듯 죽음을 타고 별에 간다'(93쪽)는 구절을 읽는 순간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가 떠오르기도 했다.



후대 사람들이 그들을 대가라고 칭하지만 상당수가 생전에는 인정을 받지 못했던 화가들이다. 이들의 그림과 사연, 에세이를 읽다 보면 자연히 더 알고 싶고 궁금한 부분이 생긴다. 가제본에 없는 곳에서 다루는지는 모르겠으나 밀레의 그림에 흥미가 생겼다. 고흐가 밀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구절을 어디선가 보았기 때문이다. 검색하던 중 밀레의 <씨 뿌리는 사람>(1850)이라는 작품이 있었고 고흐도 몇십 년 후 동일 제목으로 <씨 뿌리는 사람>(1888) 모작을 그린 사실도 알게 되었다. 화가가 그림을 그림으로 번역한 것이다. 번역은 서로 다른 언어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는 또 다른 깨달음이었다. 이렇게 두 작가의 다른 화풍을 비교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상상에 빠지게 되는 것도 미술 에세이의 묘미이자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고 보면 그림은 소수의 마니아나 독특한 취향의 사람, 특별한 신분만 즐기는 분야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현대적인 작품 가운데 추상화나 기하학적 문양을 이용한 화풍도 있어 이해가 어려운 것도 있다. 다행히도 이 책에 나오는 작품들은 섬세하고 다정하며 경험의 정도에 따라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이 많이 소개된다. 학벌이나 지식, 전공분야의 특별한 능력이나 재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평소에 미술에 조예가 깊지 않아도, 관심이 크지 않았어도 잠시 걸음을 멈추어 들여다보면 된다. 때로는 그림 자체에 별다른 해석이나 느낌이 크지 않아도 그림을 먼저 보고 감성을 드러낸 작가의 글에서 생각지도 못한 공감이나 영감이 떠오르기도 할 테니까.



작품 속 그림들은 삶 자체를 그리고 주변의 삶과 인물, 자연을 자신만의 화풍으로, 사랑으로, 섬세한 감정으로 그려낸 예술가들이 들려주는 동화에 가깝다. 누구에게도 굴복하지 않고 어떤 주류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참 예술가의 열정이 있고 따뜻한 시선이 있다. 입신양명을 꿈꾸는 그림조차도 자신의 우월을 달성하려는 이기심보다는 타인과 다음 세대에 대한 축복과 희망을 담고 있다.



우리는 관람객으로서, 독자로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응시하며 귀를 기울이면 된다. 그러면 그림은 마치 SF 영화에 나오는 블랙홀이나 양자 터널이 되어 우리에게 시공간을 넘나드는 포털의 문을 열어줄 것이다. 쉼표의 배를 타고 포털을 지나 그림 곳곳에서 드러나는 떨림을 색과 형태, 그리고 누군가 먼저 지나가며 남긴 글을 따라가면 된다. 희한하게도 나만의 해석이 펼쳐진다. 모든 해석의 출력물은 닮은 듯 다르게 나올 것이다. 먼저 지나간 작가들의 해석과 다른 나만의 언어, 느낌, 기억으로 다가올 것이다. 인간은 우주의 별만큼 많으면서도 각자 고유한 경험과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이게 뭘까, 한번 들여다볼까, 어디 잠시 의미를 생각해 볼까' 하고 열린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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