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TY OF NIGHT BIRDS)
개인적으로 발레 공연을 본 적은 없지만 <지젤 Giselle>은 들어본 적이 있다. 그만큼 역사가 깊고 유명한 발레곡이라는 뜻일 것이다. 소설의 후반부이자 발레의 결말을 뜻하는 '코다(coda)' 부분에서는 <지젤>을 공연하는 나탸샤와 사샤의 끈질긴 악연이 펼쳐진다. 전 여자친구, 전 남자친구의 위치에서 사랑하는 연기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샤와 나는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손을 맞잡고 함께 춤을 추어야 한다. 우리는 아직 흔한 인사말조차 나누지 않았다. '안녕'이나 '잘 지냈어?'와 같은 말은 우리에게 한낱 가식에 지나지 않았다. 상관없었다. 그건 불필요한 데다가 잘못되기까지 말이었으니까.
Sasha adn I have to look each other in the eyes, hold each other's hands, and dance together. We still haven't so much as said hello, but it's okay. 'Hello' or even 'how are you?' is nothing more than a charade to us;it would feel unnecessary, even false.
p.330/『 CITY OF NIGHT BIRDS 』
그들이 공연해야 하는 발레가 하필 <지젤>이라니. 소설 속에도 잠깐 줄거리가 나오지만 지젤의 두 연인의 기구한 운명이 마치 나탸샤와 사샤를 대변하는 듯하다. 작가가 이 둘의 조합을 영리하게 연결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장면이었다. 이들의 동작 하나하나가 마치 전기가 흐르는 철조망처럼 아슬아슬하게, 때로는 살벌하게 전개된다.
<백조의 호수>밖에 모르기에 <지젤>의 실제 내용을 찾아보았다. 전체적으로 2막으로 구성되는 낭만주의 발레의 대표작이며 지젤 역은 '발레리나의 대관식'이라 불릴 정도로 난도와 표현력이 상당히 높다고 한다.
1 막은 지젤은 현실 세계로 시골의 순수한 소녀 지젤이 알브레히트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내용이다. 알브레히트는 마을 청년이라 지젤을 속였지만 사실은 약혼자가 있는 귀족이었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고 심장 발작으로 죽는 지젤의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다. 2 막은 지젤이 영혼의 세계인 숲에서 등장한다. 극에서 윌리(Wilis)의 일원이 되어 남자를 죽음으로 이끄는 영혼이 되었다. 여왕 윌리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지젤은 알브레히트를 죽이지 않고 오히려 그를 보호한다. 새벽이 되어 지젤은 영혼의 세계로 사라지고 살아남은 알브레히트는 절망한다.
물론 소설 속 두 사람의 이야기가 <지젤>과 일치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들의 역사가 <지젤>의 그것처럼 얽히고설키어 진행될 것만 같은 암시를 준다. 현실 속 나와 관심사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이지만 예술을 예술 자체로 이해하면서 읽기에는 괜찮은 소설이다. 그 긴 여정이 얼마 남지 않아 아쉽지만, 가슴을 울리는 표현을 만나서 좋다. 한 장면 한 장면을 위해 작가가 얼마나 조사를 많이 하고 공을 들였을지를 생각하면서 나탸샤와 사샤의 안무를 그려본다. 그들의 마음을 따라가 본다.
City of Night Birds
김주혜 2024 Ecco Press
밤새들의 도시
김주혜 2025 다산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