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부사가 없는, 삶은 없다』를 읽고
글을 읽다 보면 때로는 기발한 아이디어에 놀라 작가의 이름을 기억하고 다른 글들도 찾아 읽게 되는 경우가 있다. 내게 '소위' 작가는 요 근래 만난 작가 중 그런 경우에 해당하는 가장 대표적인 작가이다.
신춘문예 당선작 '우는 여인'도 그랬지만 브런치에 연재한 '부사가 없는, 삶은 없다' 역시 발상이 돋보이는 글이었다. 문장에서 되도록 지양을 권장하는 품사 '부사'를 전면에 내세워 이야기를 풀어가기 때문이다. 소위 작가가 그 글들을 모아 지난달 말 책을 펴냈다. 연재 글을 묶었던 브런치북과 동일한 제목으로.
'대체로, 너무, 아무리, 결코, 제발, 억지로, 언젠가, 설령, 감히, 아무튼…' 총 59개의 부사를 주춧돌 삼아 작가는 자기만의 사유와 색깔을 글 속에 녹여내었다.
'무턱대고'라는 부사로는 살기 위해 무턱대고 들어갔던 수녀회의 이야기를 풀어놓고, '자꾸'라는 부사로는 내면에 깊숙이 박혀 있던 '나만의 슬픔'을 발견하게 된 과정을, '대체로'라는 부사로는 어째서 자신의 결혼이 대체로 행복한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도저히'라는 부사로는 참된 자신을 찾기 위해 여전히 방황하는 스스로를 가감없이 드러낸다.
책을 읽는 내내 근사하다 생각했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정확한 사랑의 실험』에 실린 동명의 글에서 '근사'라는 단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문학(글쓰기)의 근원적인 욕망 중 하나는 정확해지고 싶다는 욕망이다. 그래서 훌륭한 작가들은 정확한 문장을 쓴다. 문법적으로 틀린 데가 없는 문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말하고자 하는 바의 본질에 가장 가까이 접근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다른 문장으로 대체될 수 없는 문장을 말한다. 그러나 삶의 진실은 수학적 진리와는 달라서 100퍼센트 정확한 문장은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문학은 언제나 '근사치'로만 존재하는 것이리라.('근사하다'라는 칭찬의 취지가 거기에 있다. '근사近似'는 꽤 비슷한 상태를 가리킨다)"
책은 말하고자 하는 바의 본질에 가까이 접근한 까닭에 읽는 내내 고개를 주억거리게 한다. 그리고 심연이 오롯이 들여다보여 응원의 마음을 내게 한다.
첫 부사 '대체로'로 시작한 글('대체로, 나의 결혼은 행복하다')을 읽으며 끄덕이기 시작한 고개는 마지막 부사 '마침내'로 맺은 글('마침내, 내 글이 책이 된다')에 이르러 주먹을 쥐게 만든다.
작가는 섬광처럼 떠오른 아이디어 하나가 이 책을 있게 했다고 에필로그에서 밝혔다. 소위 작가에게 감동하는 지점은 바로 그 지점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섬광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 전환했다는 것. 그 과정은 '누구나' 시도할 수 있지만 '아무나' 성취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그렇다.
"부사 하나로 글을 쓴다는 것은 흥미롭고 짜릿했지만 때로는 고통스럽고 부담스러웠으며 때로는 지긋지긋하기도 했다. 하지만 묵묵히 브런치스토리에 매주 연재를 이어 나갔고 한 편 한 편 벽돌을 쌓아 집을 짓듯 글을 완성해 냈다."
모든 인간은 섬광을 지니고 산다. 하지만 그 섬광을 붙들어 눈에 보이는 형상물로 내어 놓는 일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것에는 묵묵히 나아가는 뚝심이 필요하다.
"이제는 인생의 후반부에 접어들었고 더는 새로운 '갓'의 경험을 맞이할 여지는 없을 줄 알았다. 그랬던 내가 소설가라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가슴이 터질 듯한 '갓'의 순간들을 다시금 겪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갓'이란 우리 삶에 어느 날 갑자기 날아든 '발신인 없는 편지'이고 '낯설지만 아름다운 방문객'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익히 알고 있고 예견하던 일들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는 말이다. (중략) 삶은 새로운 '갓'의 순간들을 무한히 창출해 내는 마법을 부린다."
오늘은 브런치 작가들에게 소위 작가가 내미는 '갓'이라는 부사의 세계에 젖어보기를 권한다.
ps.
종종 감명 깊게 읽은 책에 대한 기사를 써 오마이뉴스에 송고하곤 합니다. 최근에는 그런 기사를 쓰지 못했는데 소위 작가님 덕분에 기사 한 편을 쓰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송고한 기사는 제목만 바뀌어 메인에 배치되었습니다. 작가님에게 작은 보탬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