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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거'라는 단어에 가슴이 뜨끔했다

김지영 작가의 "거꾸로 가는 택시"를 읽고

by na지윤서

"무슨 책이야?"


식탁에 놓인 책을 보고 둘째가 물었다.


"아, 그거? 택시 운전하시는 분이 쓴 책. 내용도 좋고 재밌어. 읽어 봐."


둘째는 밥을 먹으며 책을 보기 시작했다. 곁에서 책장을 넘기는 둘째를 바라보다 슬며시 저자에 대한 정보를 조금 더 흘렸다.


"그분도 엄마처럼 시민기잔데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분이야. 배울 점도 많고 글도 잘 써서."


책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고개만 끄덕이던 둘째가 고개를 들더니 말했다.


"글을 잘 쓰시네. 술술 읽혀."


식사를 마친 둘째는 책을 든 채 소파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더니 조용히 책을 읽기 시작했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럴 때면 나는 천국을 맛본다.


둘째가 읽기 시작한 책은 "거꾸로 가는 택시"라는 책이다. 저자는 개인택시를 몰고 있는 택시 운전사로 오마이뉴스에서 시민기자로도 활동하고 있는 김지영 작가다(저자는 2016년에 "세상에 모든 소린이에게"라는 책을 출간한 바 있다).


김지영 작가의 글을 처음 접한 건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기 시작한 지 서너 달이 지났을 무렵, '나는 택시 운전사'라는 연재기사를 통해서였다. 글은 내가 접할 수 없는 세상 이야기여서 흥미진진했다.


그런데 글의 매력에 푹 빠진 건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건 사고 속에서 얻어낸 저자만의 사유가 더 큰 매력으로 작용했다. 그래서 구독을 누르고 알람이 뜰 때마다 기사를 읽고 '좋아요'를 눌렀다.


그 글들이 지난 5월 책으로 엮어 나왔다. '거꾸로 가는 택시'라는 제목으로.


책은 크게 1장과 2장으로 나뉘어 있다. 1장은 회사원, 농부, 목수를 거쳐 마침내 '택시 운전사'라는 직업을 최종적으로 선택하게 되며 겪은 이야기를 주로 담고 있다. 2장은 본격적으로 개인택시를 몰며 택시 운전사로서 세상을 바라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은 둘째의 말처럼 글이 술술 읽힌다는 점이다. 글은 어느 문장 하나 억지스러운 구석이 없어 술술 읽힌다. 이것은 체험을 바탕으로 얻어낸 솔직함이 아니고는 발현될 수 없는 미덕이다. 또 다른 강점은 세상을 바라보는 저자만의 시선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택시 운전을 하며 느낀 다양한 감정과 사유를 솔직하면서도 담백하게 풀어놓는다.


인상 깊은 이야기가 많지만 그중에 가장 인상 깊은 하나를 고르라면 나는 1장에 실린 '현장에서 마주한 차별'을 꼽겠다. 저자는 이 글에서 '이런 거'라는 표현 하나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런 거 하면 얼마나 벌어요?"

가끔 택시를 탄 손님들이 대뜸 던지는 질문이다. 묻는 사람은 '얼마나'에 방점이 찍히겠지만 택시 운전사 입장에서는 '이런 거'에 방점이 찍힌다. 이런 거라니. 마음이 심란해진다.

우리 사회에서 택시라는 직업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이 질문 안에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생전 처음 보는 직장인에게 대뜸 '연봉이 얼마예요?'라는 질문을 먼저 하지 않는다. 무례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상식의 문제다. (중략)

생각 없이 무의식에서 나오는 '이런 거'라는 말은 우리 사회에 내재된 시민의식을 있는 그대로 반영한다. (중략)

한국 사회에서 몸을 쓰는 거의 모든 직업과 함께 택시 운전사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존중받지 못한 직업이다. 개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빠진 자리는 자동으로 차별과 편견이 차지한다. 존중받지 못하면 자존감이 낮아지고 자존심은 높아진다.

차별적인 언어와 편견 어린 시선에 자주 노출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쉽게 화를 내는 이유가 그런 방어본능 때문이다. 때문에 택시 기사들은 버럭 화를 잘 내는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더해지는 악순환에 빠지고 차별과 편견은 고착된다. 그러니 택시 기사는 30여 년을 변함없이 '이런 거'나 하는 사람들이다.(중략)

민주화 이전 야만의 시절, 주위를 돌아볼 여유조차 없었던 각자도생의 시민의식이 밀려나는 자리에 스며들어야 하는 건 타자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다."


글을 읽으며 나도 '이런 거'라는 표현을 한 번쯤은 썼을 것 같아 가슴이 뜨금했다. 글을 읽고 앞으로는 물건에도 '이런 거'라는 표현 대신 '이것'이라는 표현을 써야겠다 다짐했다.


"거꾸로 가는 택시"는 끈끈한 연대나 훈훈한 인정에 대해 상찬하는 글로 채워진 책이 아니다. 어찌 보면 사회 비판서에 가깝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택시 운전사에게 가해지는 폭행과 차별의 민낯을 맞닥뜨리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라고도 할 수 없다. 이 책의 가장 튼튼한 얼개는 가장으로서, 시민으로서 건강함을 지향하는 저자의 태도이기 때문이다.


"택시를 시작한 후로 난 더 이상 은퇴 후의 삶을 걱정하지 않게 되었고, 풍족하지 않지만 가난에 빠지지도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나는 내가 꿈꾸던 읽고 쓰고 노동하는 노년의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과 안도감을 동시에 가질 수 있었다."(에필로그 중에서)


택시 운전을 해볼까 생각하는 이나 세상을 바라보는 좀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싶은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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