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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

by na지윤서

본격적으로 표준 일이 쏟아지기 시작한 지 두 달째. 일주일 단위로 원고를 검토해 넘기는 일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10월이 절반을 지났다. 이러다 2025년도 금세 저물게 생겼다.


벌여 놓은 다른 일에도 신경을 써야 하는데... 생각하면서도 올해는 이상하게도 마음뿐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는다. 원고를 검토하고, 시터 이모를 하고, 일주일에 한 번 친구를 만나다 보면 그 다른 일들에 신경이 쓰이지 않는 것이다.


어제도 그 일들을 해볼까 했지만 쨍한 햇살을 외면할 수 없다며 집을 나서는 두 딸을 쫓아 그만 집을 나서고 말았다. 햇살 속을 함께 거닐지 않을 수 없어서.


외면할 수 없는 햇살 속을 거닐다 셋 다 마음에 들어 하는 카페에 들러 커피와 다과를 즐겼다. 조곤조곤 대화를 나누며 느긋하게 흐르는 시간. 이보다 더 좋은 순간은 없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지난주에는 명절을 쇠러 미국에서 귀국한 친구를 만났다. 친정 부모 구완에 명절 기간 내내 지쳤을 친구에게 콧바람도 쏘이고 별미도 먹이고 싶어 나들이길에 나섰는데 원래 가려던 식당으로 차를 몰다 보니 낯익은 거리에 접어들었다. 바로 평창문화로.


그 길에는 맛난 리조또 가게가 있다. 지금까지 먹어본 리조또 중에 가장 맛있다 장담할 수 있는 곳. 곁에 앉은 친구에게 리조또를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담백한 음식을 좋아하는 친구여서 느끼한 리조또를 먹을까 싶어서였다.


"응, 리조또 먹지. 좋아해."

"그러면 만두 말고 리조또 먹자. 리조또 정말 맛있는 집이 있거든."

"오, 그거 좋은데! 내비가 착한 일 했네 ㅎㅎ"


내비게이션이 이상한 길로 안내한다고 타박 중이었는데 뜻밖의 전개에 친구는 내비게이션을 칭찬했다.


식당에서 맛있는 리조또와 해산물 스튜를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즈음 우리의 대화 주제는 언제나 생로병사를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에 대한 것이다. 구순을 바라보는 나이와 거동이 불편한 상태를 맞은 부모를 두고 있다 보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식사를 마치고 식당 건너편에 자리한 미술관에서 전시도 관람하고 미술관 카페에서 커피도 마셨다. 따듯한 온기로 가득한 시간이 천천히 흘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이런 시간이구나, 좋아하는 사람과 느긋하게 삶을 즐기는 시간, 인색하지 않은 시간, 뜻하지 않은 만남과 마주하는 시간. 그런 사실을 절감하는 나날이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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