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두로의 떠남은 처음으로 회피를, 도망을 자각하고 떠난 여행이었다. 서울에서의 나는 늘 과열되어 있었다. 늘 뭔가 해야만 할 것 같았고, 멈추면 무너질 것 같았다. 그는 말했다. “그냥 같이 가요. 이유는 없어도 괜찮아요.” 그 말이 나를 움직였다. 이유 없는 여행이라니, 생애 처음이었다. 늘 계획을 세워야만 안심되는 나였는데, 그날만큼은 이상하게 괜찮았다. 이번엔 달리러 가는 게 아니라, 식히러 가는 길이었다.
하지만 여행은 처음부터 순탄하지 않았다. 베이징 공항에서 청두로 가는 환승까지 20분이 남은 시점에서 비행기가 지연되었고, 급히 달려갔지만 보조배터리를 들여보내주지 않아 다섯 번이나 짐 검사를 반복했다. 겨우 비행기를 갈아타고 청두에 도착했을 때는 내 짐만 오지 않았다. 공항 한복판에서 두 시간을 기다리며 멍하니 앉아 있었다. 이상하게도 화가 나지 않았다. ‘이 여행은 아마도 이런 식으로 나를 시험하겠구나.’ 그런 예감이 들었고 그는 조용히 옆에 있었다.
청두의 날씨는 예상보다 추웠다. 옷도 잘못 챙겨서, 한겨울 도시를 혼자 가을옷 차림으로 걸어다녔다. 코끝이 시려웠지만, 그 공기가 좋았다. 도시의 속도는 느렸고, 사람들의 얼굴에는 여유가 있었다. 나는 그 안에서 처음으로 여행 중의 ‘쉼’을 느꼈다. 계획된 일정 없이, 조용히 앉아 있는 시간. 그건 나에겐 낯설고 새로운 호사였다.
그와의 여행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나는 원래 짜증을 잘 내는 편이었지만, 이번엔 그 무엇의 짜증도 없고 평온했다. 그는 나의 속도를 강요하지 않았고, 나는 그의 리듬에 굳이 맞추지 않았다. 그 사이에는 말보다 공기가 있었다. 어떤 날은 함께 걸었고, 어떤 날은 각자 멀찍이 떨어져 걷다가 다시 나란히 섰다. 그렇게 서로의 간격을 존중하는 여행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내 안의 낯선 면을 봤다. 비둘기 떼를 관찰하며 흥미로워했고, 노점에서 개구리 튀김을 구경하며 생각보다 덜 놀랐다. 오리 혀를 먹는 사람들을 보며 기겁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함께 했다. 개구리도 먹어보고 토끼 머리도, 비둘기도 먹어봤다. 그때 처음 알았다. 나는 생각보다 다양한 걸 시도해보는 사람이라는 걸. 아침마다 공원에서 탁구 치는 노인들의 소리, 찻잎이 뜨거운 물에 풀리는 소리, 그런 사소한 소음들이 내 마음을 어루만졌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조용히 앉아 세상을 구경하는 사람이었다. 늘 일하던 손이 잠시 멈췄고, 늘 시끄럽던 머리가 조용해졌다.
밤에는 숙소의 창가에 앉아 도시의 불빛을 바라봤다. 불안은 여전했지만, 이상하게 그 불안이 평온하게 느껴졌다. 도망이라기보다, 잠시의 후퇴. 숨이 가빠 달리다 멈춘 사람처럼, 그저 숨을 고르는 중이었다. 이번 도망은 조금 달랐다. 불안해서 떠난 게 아니라, 불안을 품은 채 쉬러 간 도망이었다. 그건 치유라기보다, ‘인정’의 형태에 가까웠다. 나는 아직도 완벽하지 않지만, 그래도 지금 이 자리에서 살아 있다는 사실. 그걸 인정하는 시간이었다.
그와 나는 여행 내내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같은 풍경을 봤다. 길모퉁이의 붉은 간판, 따뜻한 국물 냄새, 비 오는 거리의 반짝임. 그런 사소한 순간들이 쌓였다. 때로는 말보다 같은 장면을 본다는 게 관계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 말이 필요 없는 사람, 설명하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은 사람. 나는 그와 함께 있는 동안 내 안의 온도가 조금씩 내려가고 있었다.
여행의 끝자락에서, 그는 내게 물었다. “세상의 끝이 어디라고 생각해요?”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혼자요.” 그가 미소 지었다. 그리고 말했다. “그럼, 오늘은 그 끝에서 둘이네요.”
그 말이 오래 남았다. 세상의 끝은 결국 혼자라고 믿어왔던 나에게, 그 말은 작은 균열을 냈다. 혼자서도 괜찮다고, 외로움에 익숙해지는 게 어른이 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날은 조금 달랐다.
‘아, 함께 있고 싶다.’
그 한 문장이 내 안에서 조용히 피어났다. 도망만 하던 내가, 처음으로 누군가와 ‘머물고 싶다’는 마음을 느꼈다.
그날 이후, 혼자였던 내 세상에 처음으로 ‘둘’이라는 온도가 생겼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사람의 온도였다. 그리고 그 온기를 품은 채, 나는 둘이되어 일상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