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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친 것뿐인데 브랜딩이 잘됐다

by Defin

프리랜서가 되고 나서야 알았다. 나는 사실 계속 도망쳐왔는데, 사람들은 나를 도전하는 사람으로 봤다는 걸. 누군가는 용감하다고, 누군가는 멋지다고 말했다. 듣기 좋은 말이었지만, 마음은 묘하게 불편했다. 도전이 아니라 겁이었다. 견딜 자신이 없어서 자리를 옮겼을 뿐인데, 그게 도전처럼 보였다. 브랜딩이 잘된 도망이었다.

내가 해온 도망에는 언제나 이름이 있었다. 대학원은 ‘새로운 경험’, 이직은 ‘성장’, 퇴사는 ‘전환’, 그리고 프리랜서는 ‘자립’. 같은 움직임인데, 단어를 바꾸면 의미가 달라졌다. 그렇게 나는 매번 다른 이름의 도망으로 살아남았다. 사람들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나는 변화를 두려워한 사람이었다. 변화를 피하기 위해 더 큰 변화를 택하는, 어딘가 어긋난 생존 방식.


처음 프리랜서가 되었을 때 나는 자유를 믿었다. 내 이름으로 일하고, 내 기준으로 결정하며, 내 시간에 맞춰 사는 삶. 하지만 곧 알았다. ‘자유롭게 일한다’는 건 시스템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시스템을 직접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회사는 외부로터의 공격으로 나를 지켜주고 시스템이 내 일을 돕는다. 하지만 프리랜서가 된 나는 그 시스템을 혼자서 다시 세워야 했다. 일은 자유로웠지만, 그 자유에는 끝없는 관리와 불안이 따라붙었다.


B2B 프로젝트를 하던 시절엔 돈도 돈이지만 마음이 닳았다. 메일 하나에 수십 명이 참조되고, 회의는 결론 없이 길었고, “이건 좀 더 심플한데 화려하게요” 같은 모호한 말 한마디에 일주일 밤이 지워졌다. 확정되지 않은 기획안으로 수십번의 디자인 수정이 그려졌다. 말도안되는 요구도 많았고 돈 떼어먹힌적도 있다. 그래서 이번엔 방향을 바꿨다. 이제는 기업이 아닌 사람을 상대하자고. B2C라면 조금은 다를 거라 믿었다. 하지만 달라진 건 상대의 얼굴뿐이었다. 말의 본질은 같았다. “감성적으로요, 근데 너무 감성적이면 안 돼요.” “예쁜데, 비싸 보이게 하고싶은데 너무 복잡하면 안 돼요.” 결국 프리랜서 디자이너의 일은 감정의 싸움이었다.


그때부터 사람 대신 구조를 보기 시작했다. 감정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일할 수 있다면, 불안이 덜할 것 같았다. 그래서 관계 대신 체계를 세웠다. 반복 가능한 방식, 예측 가능한 결과. 그게 나의 생존 방법이었다. 나는 다시 일의 구조를 짜기 시작했다. 감정을 배제한,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시스템. 그 안에서는 기분이 아니라 규칙이, 사람 대신 프로세스가 일했다. 그건 효율을 위한 선택이라기보다, 마음이 상하지 않기 위한 방어였다.

그 시절 처음으로 ‘자판기’라는 말을 떠올렸다. 누구나 똑같이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결과가 나오는 구조. 사람의 기분이나 타이밍, 상황이 끼어들 틈이 없는 세계. 그 안에서는 누구의 눈치도, 누구의 감정도 필요 없었다. 자판기 안에서는 센스가 아니라 시스템이 작동했다. 그건 나에게 이상적인 구조였다. 사람보다 기계가 낫다고, 감정보다 예측이 낫다고, 그때는 진심으로 믿었다.


그래서 나는 시스템을 만들기 시작했다. 브랜드마다 공통된 패턴을 찾아내고, 반복되는 일을 자동화하고, 누구나 같은 품질로 결과를 낼 수 있는 틀을 설계했다. 사람들은 그걸 보고 "구조를 짜는 사람 같다”고 말했다. 그 말이 좋았다. 하지만 알고 있었다. 그 구조는 결국 불안에서 비롯된 방어막이었다는 걸. 다시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 만든 울타리였다. 그럼에도 그 울타리 안에서 나는 처음으로 숨을 고를 수 있었다.


사람들은 어렸을적부터 늘 내게 말했다. “넌 진짜 도전적이야.” “두려움 없이 나아가는 사람 같아.” 그 말이 들릴 때마다 웃었다. 사실은 무서워서 시작한 일인데, 겁이 많아서 여기까지 온 건데. 하지만 이제는 굳이 부정하지 않는다. 어쩌면 도망도 방향만 바뀌면 도전이 될 수 있다. 나는 단지 그 방향을 잘 바꾸는 사람이었을 뿐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스스로를 끊임없이 리브랜딩하며 살아왔던 것도 같다. 도망이 그렇게 만들었다. 세프에서 기획자로, 기획자에서 디자이너로, 직장인에서 프리랜서로. 이제는 1인 사업자로 뿌리내리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직업은 바뀌었지만 본질은 같았다. 버티고, 무너지고, 다시 일어나 구조를 세우는 일. 사람들은 그걸 ‘감각’이라 불렀고, 나는 그저 살아남기 위해 포장하는 법을 배웠을 뿐이었다.


도망을 전략으로 바꾸는 법, 불안을 시스템으로 번역하는 법, 회피를 구조로 가공하는 법. 그것이 내가 배운 일의 언어였다. 어쩌면 이 모든 게 브랜딩일지도 모른다. 버티는 방식에 이름을 붙이고, 무너진 자리를 이야기로 만드는 일. 결국 도망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나는 여전히 겁이 많고 불안한 사람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불안이 나를 움직이게 하고, 그 겁이 나를 설계하게 한다는 걸. 도망은 여전히 내 안에서 자주 고개를 들지만, 그 도망 덕분에 나는 멈추지 않는다. 어쩌면 내 인생은 계속 그렇게 흘러갈 것이다. 도망치면서 만들고, 불안 속에서 구조를 세우며, 오늘도 어떻게든 살아내는 일.


그래서 이제는 부끄럽지 않다. 도망친 것뿐인데 브랜딩이 잘됐다. 그 말이 조금 웃기지만, 지금의 나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는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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