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품보다 수제품에 가까운 내 꿈은
대량 생산이 불가능하다.
어디서나 팔리고, 누구에게나 어울리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다.
전문적인 공정 대신, 느리고 서툴더라도
나의 손길을 필요로 한다.
수제품 같은 내 꿈은 처음엔 재단선이 삐뚤고, 마감이 거칠고 어색하다.
하지만 그 자유분방한 거침 속에서 나만의 특수성이 배어난다.
기성품은 누구에게나 맞게 재단된 사이즈로, 다수가 선호하는 디자인과 컬러, 마감은
매끄럽고 사용법에 맞는 설명서도 있다.
대신 그만큼의 생기도 덜하다.
이미 누군가의 손에서 검증된 모양이라,
내 체온이 닿을 틈이 없다.
세상은 기성품의 편리함을 찬양한다.
그것은 모양이 같고, 기능이 뛰어나며,
실패 확률이 적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조금 불편하고
덜 완성된 것들을 좋아한다.
완벽하지 않게 그어진 선 안에서, 나는 나를
더 잘 알아본다. 내 꿈도 그렇다.
한 번에 완성되지 않고, 수없이 뜯어고쳐야 한다.
이음새가 어색해도, 손때가 묻어도 괜찮다.
왜냐하면 나는 그것을 ‘만드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의 시행착오, 나의 망설임, 나의 실패와
기쁨이 실밥처럼 얽혀 있다.
기성품은 완성으로 가는 길을 단축하지만, 수제품은 과정이 흔적이 된다.
우리는 가끔 “이 정도면 괜찮지”라며 남의 꿈을 빌려 입는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그 꿈이 나에게 닿지 않는다.
너무 크거나, 너무 답답하거나. 그제야 느낀다.
나에게 맞는 것은 시중에 팔지 않는다는 걸.
꿈이 수제품에 가까워지려면 측정이 먼저가
아니라 감각이 먼저인 것 같다.
세상의 눈금을 잠시 내려놓고, 내 안의 리듬으로 재야 한다.
삐뚤어도 상관없고 손끝으로 꿰맨 자리가
보이면 더 좋겠지.
그것이 내 인생의 ‘수제’다.
오늘은 미완의 선 하나를 그어놓고, 내일은
그 위에 내가 좋아하는 색을 골라 색을 덧칠할 것이다.
내가 칠한 색이 조화를 덜 이루더라도 큰 문제가 아니다.
내 꿈이 조금씩 ‘나’에 맞게 조율되어 가기만 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