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은 언제나 기억의 냄새를 품고 있다.
집된장의 깊고 따뜻한 숨, 마늘의 알싸한 향,
불의 잔열.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과거의 흔적이 아니다.
부엌에서 이어지는 것은 복원이 아니라 전승이다.
전승이란 단지 과거를 지키는 것만이 아니라, 그것을 현재의 언어로 다시 살아 움직이게 하는 행위다.
어머니가 하던 방식이 그대로 되풀이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방식을 몸으로 기억하며 다시
내 손맛으로 갱신하는 일이다.
요리를 한다는 건, 시간을 다시 데우는 일이고 부엌은 그것을 실현하는 공간이다.
다만 그 시간은 과거에 묶이지 않는다.
새로운 식재료, 새로운 감정, 새로운 식탁의
풍경이 매번 달라지듯 부엌의 기억도 계속 변주된다.
오래된 조리법이 내 손끝에서 새롭게 태어나고, 말보다 오래 남을 그 사랑의 방식이 다른 형태로 표현된다.
불, 칼, 냄비, 그리고 손. 이 모든 도구는 전통을 흉내 내는 게 아니라, 오늘의 나로서 그것을
다시 살아내는 도구들이다.
어머니의 손, 그 손끝의 리듬은 내 몸에 남아 있다. 도마에 경쾌하게 마늘을 다질 때 국 간을 보기 위해 한 숟갈 떠 맛보며 “좀 싱겁네”라고 혼잣말하는 것. 그것은 흉내가 아니라 기억의 재해석이다.
어머니의 부엌이 나의 부엌으로 이어지고,
나의 부엌이 또 누군가의 삶으로 번져갈 것이다.
그렇게 맛과 기억은 계속 다른 형태로 태어난다.
부엌은 과거의 박물관이 아니라, 현재를 통해 과거가 다시 숨 쉬는 곳이다.
불이 꺼져도 그 향은 오래 남는다.
전승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꺼지지 않는 불의 마음.
내 마음도 부엌에서 피어난 그 불처럼 오랫동안 꺼지지 않고 이어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