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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닳은 운동화를 바라보며

by 소원상자

40대 초반의 이른 명예퇴직으로 대기업의 반듯한 회의실도, 말끔한 정장과 매끄러운 보고서의 문장도 이제 과거의 시간에 남겨 놓고, 새벽의

찬 공기와 먼지 낀 현장이 그의 하루를 채운다.




현관의 반그늘 아래, 남편의 운동화가 쉬고 있다.

하루의 끝에서 막 돌아온 기척처럼, 아직 조금 따뜻하다.

마치 하루의 끝을 몸으로 기억한 채, 그 마지막

체온만 남겨둔 작은 생명체처럼.

운동화의 밑창에는 남편이 지나온 거리와 바람,

땅이 건넨 조용한 저항이 묻어 있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하루의 잔여물들.

그 모든 것이 신발의 굴곡 사이에 눌어붙어있다.

그는 이렇게 오늘도 자신이 지나온 만큼의 침묵을 집으로 데려왔다.




나는 이 운동화를 들여다보며 남편의 하루를 조용히 더듬는다.

그가 말하지 않는 마음의 무게를 운동화는 언제나 먼저 알고 있는 듯했다.

피곤해서 생략해 버린 감정들과 혼자 삼켰을 작은

난기류가 끈과 바닥창 사이에 겹겹이 얹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그의 걸음에는, 그가 말하지 않은 많은 문장들이 누워있다.

가볍게 털어주면 바람 속으로 날아가는 먼지들이

가장의 무게를 조금 덜어준다.

그 순간 나는 어렴풋이 이해한다.

사랑이란 거창한 몸짓이 아니라 누군가의 신발 한 켤레를 바라보며 그의 걸음을 함께 견뎌보려는

아주 작은 마음의 움직임이 아닐까.




밤이 오고, 현관이 고요해지면 운동화는 더 깊이

잠든다. 그 모습은 이상하게도 위로가 된다.

그의 걸음이 다시 돌아올 곳이 이 집이며, 나이며,

우리가 함께 꾸려가는 작은 세계라는 사실이 조용히 실감 나기 때문이다.




오늘의 끝이 이 집에 닿았다는 사실, 그의 마지막

걸음이 이곳에 도착한다는 사실이 나를 잠잠하게 안아준다.

그가 돌아온다는 사실 하나로, 집은 다시 집이 된다.




가족이 필요한 소비엔 관대하지만 물건이 해어질 때까지 자신의 새 물건을 사는 법이 없는 남편을 보며 미안함과 고마움이 동시에 밀려온다.

그의 수고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기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을 가다듬는다.

부서지기 쉬운 책임의 무게를 그는 묵묵히 떠안고 있으므로.

오늘도 내 몫의 걸음까지 포함해 두 사람의 하루를 기꺼이 걸어준 남편을 존경한다.




적어도 이 운동화는 가장의 땀과 존엄을 품은 채

하루하루 더 단단해지고 있다.

고맙고, 또 미안하다.

생색을 모르는 씩씩한 한 남자의 발걸음에 작은 기도를 얹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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