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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보물(엄마가 보믈)

by 소원상자

'엄마가 보믈(엄마가 보물)'


아이가 한글을 배우기 시작한 지 좀 지난 네 살

어느 날, 귀여운 복숭아모양 메모지에 아이가 쓴

글귀를 받은 느낌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아직 너무 작고 따뜻하고, 말보다 마음이 더 크던 나이.



세월은 참 부드러운 얼굴을 하고 나타나 사물에게는 날카로운 손길을 남기는 것 같다.

시간은 종이를 먼저 늙힌다.

코팅은 벗겨지고, 종이는 바래고, 연필심은 물기에 닿은 듯 살짝 번져 희미해졌다.

어떤 날은 글자를 아예 읽지 못할 것처럼 흐릿하게 보이기도 한다.




사랑은 종종 어설프게 등장하지만, 가장 정확하게 도착한다.

나는 신기하게도, 쪽지가 흐려질수록 그날의 아이가 나에게 더 또렷해짐을 느낀다.

작은 손. 가느다란 손톱.

연필을 쥐느라 힘을 너무 준 탓에 생기던 손가락의 작은 떨림.

말보다 먼저 배운 ‘전하고 싶은 마음’이라는 언어.

나는 그 쪽지를 가만히 펼쳐 들며 생각한다.




부모가 된다는 건, 어쩌면 아이와 함께 기억의 관리인이 되는 일인지도 모른다.

아이가 잊어버린 시간을 대신 살고 아이보다

더 오래 그 시절의 내음을 간직하는 사람.

낡아가는 종이를 보며 사라지지 않으려는 마음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다시 주워 담는 사람.




살이던 그 아이는 갓 성인이 되어 이제 훌쩍 자랐다.

고운 그 마음을 그대로 간직하고 자라나 내가 기대도 될 만큼 크고 단단해지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유치원가방보다 컸던 그 마음만은

아직 내 안에서 네 살 크기로 남아 있다.

아마 평생 그렇게 남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자신이 가장 아름다웠던 나이로 남는다.

아이에게 나는 네 살의 엄마였을 것이고,

나에게 아이는 네 살의 아이로 남아 있다.




아이가 처음으로 자신 안의 사랑을 ‘글자’로 세상에 꺼낸 순간이자, 시간이 남긴 가장 강렬한 증거였기 때문이다.

나는 조금 흐려진 글자를 다시 읽는다.

'엄마가 보물'




아이는 기억하지 못할 문장.

그러나 나는 잊지 못할 문장.

그 문장은 시간을 건너와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반짝이고 있다.




어떤 사랑은 지워지지 않기 위해, 오히려 더 희미해지는 방식을 선택하는 것 같기도 하다.

조용히, 아주 조용히 우리 안에서 계속 글자를

다시 쓰고 있는 것이라고.

시간을 머금고 점점 더 커지는 사랑은 낡음 속에서도 기어코 자신을 증명해내려 하는

가장 고집스러운 빛 같다.

아이가 써 준 그 오래된 쪽지처럼, 나 역시 아이의 마음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문장으로 남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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