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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우연히 명의를 만났다

by 소원상자

내게 익숙한 병원은 늘 소독약냄새가 살짝 풍기는 적막한 곳이어야 하는데 그날은 유난히 마음속 잡음까지 증폭시키는 오후였다.

번호표 대신 통증과 불안이 손에 쥐어졌고 대기실 의자들은 각자의 사연으로 삐걱거렸다.




진료실 문을 열고 앉았다.

그때였다.

명의는 광채를 두르고 오지 않았다.

건조하다 못해 냉정해 보이는 위엄도, 교과서

같은 딱딱한 말투도 아니었다.

그는 피로한 내색 없이 내 장황한 말을 충분히

경청해 주었고 차트와 모니터보다 먼저 사람의 얼굴을 읽는 것 같았다.




“많이 힘드셨죠.”

그 짧은 한 마디가 청진기보다 정확하게 내 심장을 찾아냈다.

병은 몸에 있었지만 그는 내 고통을 읽고 있는 사람처럼 자꾸 마음부터 진찰했다.

아프다는 말 사이사이 괜찮아질 가능성을

작게, 그러나 확실하게 놓아주었다.

진료는 끝났고 나는 완치되진 않았지만,

그리고 내일 덜 아플지도 알 수 없지만

이상하게도 조금 나아진 얼굴로 엘리베이터를 탔다.




명의란 신의 손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고통스러운 내적 무게를 두 손으로 받아 드는 존재라는 걸 느낀다.

그리고 병원에서 가장 드문 치료제는

약도, 수술도 아닌 한 사람의 태도라는 것도.

이곳의 진료실은 진료실과 회복실을 겸하고 있는 느낌이다.




그날 나는 아픈 몸을 안고 갔고, 위로가 충전된 마음을 안고 돌아왔다.

아픈 날은 보통 하루를 잃어버린 기분이 들지만, 그날은 이상하게도 무언가를 얻은 느낌이었다.

살다 보면 이런 날이 있다.

진료를 받으러 갔다가, 사람에게서 치료를 받고 나오는 날.

그리고 그 기억은, 다음에 또 아플 때를 대비해

내 인내서랍에 조용히 넣어두는 작은 상비약 하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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