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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네 Sep 16. 2024

01. 남쪽 스페인 몇 장을 골라

초겨울 같기도 초여름 같기도 했던 2월

게으름을 이겨내고 꾸준히 글을 쓰겠노라 다짐했었는데 시간이 어느새 또 훌쩍 지나가 버렸다.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역시 나에게 글쓰기는 어렵다.


7월이 시작되면서 ‘하반기’라는 새로운 시작점을 만들어 줄 수 있게 되니 ‘다시 글을 써야지’, 하고 나를 다독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7월에 시작한 글을 9월 중순인 지금에서야 마무리한다.)


또 다른 하반기 다짐의 결과물로 가방 한가득 책을 빌려 집으로 오는 버스 안에서 무엇에 대해 쓸까 한참 고민했다. 내가 찍은 사진들과 뭔가 의미 있는 것들 엮어 내고 싶다는 생각에 이런저런 주제를 떠올리다가 이러다가는 한 자도 못쓰겠다 싶었다.

생각할수록 부풀어 오르기만 하니. 그러다 날아가버리거나 터지거나 꼭 그럴 것만 같았다. 그래서 쉽게 가기로 했다. 그냥 일기처럼 쓰기로!



‘즐겨 찾는 항목’을 다시 설레는 마음으로 들여다본다. 역시 가장 쉬운 건 내가 마음에 쏙 드는 것들에 대해 말하는 거다.





지난 2월, 스페인으로 가족여행을 떠났다. (정확하게는 네덜란드와 스페인이라는 낯선 조합으로. 네덜란드는 나의 동생이 대학 생활을 하고 있는 곳이었으므로, 부모님은 그곳에 들러 동생의 새로운 터전을 보고 싶어 했기 때문에 넣은 나라였다. )

한 겨울에 비바람 치던 네덜란드에서의 시간들은 이다음에 한번 더 묶어 기록할 것이다. 이번엔 쉬운 것부터 쓰기로 했으니, 내가 더 좋아했던 스페인 남부 사진부터.



톨레도 기차역, 마드리드 마요르길, 톨레도 마을 안
세비야 메트로폴 파라솔 앞, 마드리드 마요르 광장 안, 세비야 대성당 앞


길을 걷는 내내 눈이 이리저리 돌아가고 계속 셔터를 누르게 되는 이유는 건물 하나하나가 다 다르게 생겼기 때문이다. 언뜻 보면 비슷하게 생겼다 싶다가도 창문을 감싼 틀, 테라스 난간의 모양, 벽과 기둥의 색이 조금씩 다 다르다.

다 다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하나하나 집중해서 보게 되는데, 집중해서 보다 보면 또 더 많은 개성들이 보인다.

한번 더 써봐야겠다. 다 다르니까 하나하나에 더 집중하게 된다. 그때 보이는 예쁜 구석들이 참 많다.

모두 톨레도 마을 안 건물들


저마다의 색과 장식이 어우러진 건물은 도시를 생기 있게 만든다. 똑같은 보폭으로 걸음을 걷는 것은 왠지 이 도시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괜히 춤추듯 당김음으로 걷다가 양팔 벌려 한 바퀴 빙글- 돌아보기도 했다. ‘나도 이런 색깔과 모양을 가지고 산다’고 한껏 드러내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다.



그라나다 알바이신 지구 골목, 세비야 시내 머물던 숙소 앞


오렌지 나무도 남부 도시에 생기를 불어넣는데 크게 한몫했다. 어딜 가나 가로수로 쓰이는 오렌지 나무가 여기저기 자리 잡고 있었다. 맛이 없는 관상용이라고 하던데. 주렁주렁 탐스럽게 모여 열린 오렌지들은 건물 색과 잘 어우러지면서 혹은 강렬하게 대비되면서 자신에게 부여된 심미적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길가에 떨어진 것들도 그 나름대로 멋이 있다.

괜히 저 오렌지를 건드려 보고 싶던 나는 발로 푹 한번 밟아 봤더랬다.


태양의 에너지를 듬뿍 받아먹은 듯한 탐스러운 주황빛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푸근하다. 자연의 상징과도 같은 평온한 색, 초록과 어우러지는 조화가 참 좋다. 열매가 줄기와 잎 사이 일정한 규칙 없이 자리 잡고 있는 모습에서는 묘한 균형감이 느껴진다.

그 자체로 완벽한 피사체라, 옆에 둔 것이 무엇이든 만족할만한 사진이 나온다. 머무는 내내 어딜 가도 보이던 오렌지 나무지만 그때마다 계속 핸드폰을 꺼내들 수밖에 없었던 건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세비야 골목을 돌아서면서 발견한 타파스 가게. 테라스가 넉넉하다.   발렌타인을 맞아 꽃을 파는 가판대가 같이 열려 있다.


균형감은 내가 사진을 찍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다. 지나가다가 보면 뷰파인더 안에서의 좌우 대칭, 수평, 무게중심이 한눈에 훅 들어오는 순간이 있다. 사진 찍으라고 누가 만들어 준 것만 같은 장면을 보는 순간. 그러면 핸드폰 화면을 쓱 왼쪽으로 밀어 카메라를 켠다.


론다에서 세비야 가는 길 들린 휴게소, 론다 시내 식당가

꼿꼿하고 높다랗게 뻗은 나무가 멋스럽다. 키가 작고 잎이 양옆으로 풍성했다면 건물과 함께 담고 싶지는 않았을 텐데, 뚝 뻗은 기둥 끝에 막대 사탕처럼 둥근 모양으로 붙은 줄기와 잎 덕분에 마음에 쏙 드는 구도가 되었다. 야자수 나무는 기둥의 시작점이 두툼한 것도 안정감 있어 좋다. 오렌지 나무는 아직 제 성에 차게 자란 것은 아닌 듯 하지만 건물의 문 높이와 적절한 균형을 맞춰주었다.


그나저나 우리가 가장 좋아한 론다를 지나 세비야로 가는 길, 화장실이 급해 들린 휴게소에서는 메뉴판을 제대로 볼 새도 없었다. 제일 큼지막하게 메뉴에 써져 있던 것이 코카콜라여서 얼떨결에 ‘꽈뜨로 콜라’를 외쳤다.

보기 드문 병콜라로 서빙 되었다. 졸지에 콜라 중독자 가족이 됨


우리는 겨울 니트를 입고 있었는데, 말라가 시내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비 오는 날씨가 계속되어서 딱 적당한 옷차림이었다.


그러다 미술관을 다녀와서 점심 식사를 하는 동안 하늘이 금세 개더니, 갑자기 사람들이 해수욕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까까지 패딩 입고 다니던 사람들이 갑자기 수영복은 어디서 났는지, 이럴 줄 알았다는 듯 선글라스를 끼고 태닝을 시작했다.


말라가 해변가

답답한 니트 차림이었지만 그래도 해변가에서 발 한번 안 담그고 갈 순 없으니 해변으로 발을 옮겼다. 새파란 물색, 촤르르르 파도 밀려 나가는 소리, 자글자글 하게 부서지는 햇빛. 모든 게 내가 사랑하는 계절 초여름 같았다. 각자의 방식으로 바다를 즐기는 사람들의 여유 있는 모습을 담았다.


렌즈에 선글라스를 씌워, 고갤 돌려 처음 봤던 장면 그대로를 의도했다.



론다 가는 길. 윈도우 배경화면이 양옆으로 펼쳐져 가는 내내 카메라를 듦




스페인 광장


야경을 찍기 가장 좋은 때는 해가 지고 난 직후다. 아직 하늘에 옅게 햇빛이 깔려 있는 동안 조명이 켜지면, 낮이 머문 흔적이 아직 남아 있는 하늘과 저녁을 맞이하는 도시를 함께 찍을 수 있다. 그 시간에 맞춰 야경을 찍고 싶었던 아빠와 나는 피곤한 몸을 달래 스페인 광장으로 향했다.


그러나 낮에 봐두었던 원래 가려던 입구가 막혀 있는 게 아닌가. 광장 안은 휑 하니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만 포기하고 돌아가려다가, 혹시나 혹시나 하면서 벽을 따라 빙 둘러 가 보니 또 다른 입구가 있었다. 포기한 상태로 가로등만 찍고 있다가 갑자기 마주한 이 극적 상황에 신이 난 우리는 각자 스페인 광장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스페인 광장


10분 남짓한 짧은 시간 동안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도 천천히 아주 느리게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 벅찬 감정을 더 끌어올리기 위해 이어폰을 꺼냈다. 재생목록에 떠 있는 노래들 중 가장 잘 어울리는 노래를 골라 같이 음미했다.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고 두 팔도 자연스럽게 따라 올라갔다.


노래가 끝날 때쯤 엄마가 줄 서 있던 한식당에 들어와 있으니 얼른 오라고 전화가 왔다. 김치찌개를 먹어야 하나 순두부찌개를 먹어야 하나 고민하면서 종종걸음을 걸었다.





글을 마무리하는 지금은 9월, 졸음이 밀려와서 이 정도로 마무리한다. 다소 엉성한 마무리지만, 그래도 두 번째 글을 발행할 수 있어 정말 기쁘다.


부디 세 번째 글도 무사히 세상에 나올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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