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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주 사는 이야기 Aug 04. 2022

도시락 걱정이 나라 걱정보다 더 무겁다

오늘은 뭘 싸가나?

도시락
점심밥을 담는, 고리버들이나 대오리로 길고 둥글게 결은 작은 그릇.
플라스틱이나 얇은 나무판자, 알루미늄 등으로 상자처럼 만든, 밥을 담는 그릇, 거기에 반찬을 곁들인 밥.


내가 기억하기론, 내가 고등학교 때, 급식을 시작했으니,  그것도 한국에서는 늦은 축에 속하지만,

25년 전에 한국은 학교 급식이 대중화되었었다.


급식을 하면서 밝아진 엄마의 얼굴을 보니, 정말 좋긴 했었다.  아줌마들끼리 보며, 급식을 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할 때도 사실 그런가.. 그랬지 그 기쁨은 크게 와닿진 않았다. 그런데 급식을 시작하고부터 이게 완전 신세계였다.    

무거운 도시락을 가지고 다니지 않아서 좋았고, 게다가 급식비는 얼마나 쌌던지!!

지금 생각하면 급식을 해 주신 분께 엎드려 감사 인사를 하고 싶은 생각마저 든다.

든든한 밥에, 국에, 각종 다른 반찬에.. 주말엔 특식이 제공되어, 부산 명물인 비빔 당면이며, 가락국수이며, 핫도그 등. 앉아서 맛볼 수 있었으니!!!!

사진은 구글에서 퍼온 사진 입니다. 25년 전 내 급식 사진이 없어서..


그런 급식은

아침 7시에 집을 나서 밤 12시 넘어야 집에 들어갈 수 있었던 팍팍한 고등학교 때의 한낱 빛줄기였다고나 할까?

오늘은 뭐 나오노? 그러면서 급식 종이를 펼쳐가며 동그라미 쳐가며,

좋아하는 반찬이 나오는 날은 형광펜을 칠하며 기다리고 기다렸던. 그런 내 추억!

4 교시가 가까울 무렵, 복도에서 조용히 급식들이 오는 소리와 냄새를 맡을 때의 그  짜릿함이 중추신경 하나하나가 다 기억나고 그립다.


그런 내 추억이 소록소록 생각나니, 더 지금의 내 모습이 격세 지감이다.


나는 매일 도시락 뭐 싸지?로 고민하는 호주 아줌마다.

아니 진짜, 우리도 한 급식을 우리 아이들도 못하고 있는 호주 현실을 보면서, 내가 참 시골에 살고 있구나.. 다시 한번 느낀다.


여긴, 아무래도 알레르기나 못 먹는 음식이 많아서 급식을 하지 못한다.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럼 그런 음식 빼고? 하면 안 되나?라고 생각도 들지만, 언감 생시 그거 생각하면 뭐 풀 수 없는 문제만 걱정하는 꼴이라 고만둔다.

여하튼 급식이 없다 보니,  호주 모든 엄마들은 도시락 뭐 싸지? 가 일대 과제다.


아이가 학교 들어가기 전엔 도시락 통 뭐 사지로 고민을 한다. 칸이 몇 개 있는 있는 게 좋을까? 플라스틱이 낫나? 스테인리스가 낫나?

를 겨우 결정해서 사고 나면,

그 통을 뭘로 채우지가 앞으로 10년 과제다.


매번 똑같은 걸 쌀 수 없으니, 어느 날은 김밥, 주먹밥, 샌드위치, 핫도그, 랲, …. 그러고도 냉장고에 재료도 없고, 정말 아... 무 생각이 안 나면,

호주의 매점인 턱 샾( tuck shop)에 sos. 그리곤 주문한다.


다양한 과일이며, 모양에도 신경을 써야 하니, 아침 숙제가 따로 없다.

여름엔 혹시 상할까 싶어 얼음팩도 넣어주고 해야 하니 무게도 무겁고,

커다란 가방엔 도시락 가방 넣고 나면 끝이다.


매일 끼니 뭐 먹을까도 고민돼 죽겠는데, 도시락 뭐 쌀까 까지 겹치니 아니 이건 뭐 먹으려고 사는 사람 같다.

예전 엄마가 우리가 급식을 시작했을 때 그렇게 만세를 불렀는지 알 것 같다.

그 만세 나도 정말 부르고 싶은 데 말입니다.


오늘도 서둘러 도시락을 싸서 보내고 하루 숙제를 다 한 사람 마냥 홀가분하게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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