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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쇼(No-Show), 이탈리아에서도?

by 이지윤

당신의 아침은 어떻게 시작되나요?


이탈리아에 와서 저는 요리사 일을 하고 있어요. 몇 년 전까지는 레스토랑 점심 저녁 서비스를 모두 쳐냈지요. ‘쳐낸다’ 표현이 꽤 거칠지요? 그러게요. 레스토랑 주방 일은 그야말로 전쟁과도 같은 느낌이 들 때가 많답니다.


아무리 늦게 잠자리에 들어도 아침 7시 전에는 일어나 108배와 뜨거운 물 샤워를 마쳤어요. 오전 8시 45분에는 이미 셰프 재킷으로 갈아입고 주방에서 스탠바이였죠.


아침 식사는 생략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에너지가 너무 달린다는 느낌이 들고 아침부터 시든 상추 꼴이 될 때만 카페테리아에 잠깐 들렀답니다. 입장부터 전투적으로 카페떼리아에 들어가, 바에 선 채로 서둘러 호로록 카푸치노를 마시고는 재빨리 계산을 하고 사라졌죠.


최근에는 저녁 서비스만 하게 되면서 하루의 꽃은 저녁 식사 서비스 시간이 되었어요. 덕분에 가끔 늦잠을 자는 호사를 누리게 되었지요.


누군가가 정성껏 준비해 주는 카푸치노 한 잔이 생각나는 날에는요? 제가 사는 구릉구릉 구불구불 언덕길을 10분 정도 운전 해서 내려가 아주 작은 제과점 ‘수크레’로 갑니다.

맛도 좋지만 인근에서 제일 예쁜 무늬의 카푸치노를 기분 좋게 눈으로도 마실 수 있는 곳이지요. 이탈리아 사람들이 아침 식사로 반기는 부드러운 이탈리아 브리오쉬는 물론, 파삭한 프랑스 식 크로와상도 취향에 따라 골라 맛볼 수 있지요.

아침 식사는 물론 포장 손님으로도 언제나 붐비는 곳이에요. 이탈리아에서 누군가의 집에 식사 초대를 받아 갈 때면 초대에 감사하는 의미로 꼭 준비해 가는 여러 종류의 엄지손톱만 한 작은 후식 ‘삐꼴라 빠스티체리아(piccola pasticceria)’가 쇼케이스 가득하거든요.


엄지 손톱 크기 미뇽이 가득한 제과점 쇼케이스. 사진: 이지윤


하루는 섬세한 깃털 무늬의 카푸치노와 꼬꼬마 몽블랑을 앞에 두고 기분 좋게 아침 식사를 천천히 하던 참이었어요.


아주 작은 돌치, 카푸치노 한 잔과 함께하는 느긋한 아침 시간. 사진: 이지윤


한 젊은 여성 손님이 미니 페이스트리 미뇽 전용 쇼케이스 앞에 서서 열 개도 넘는 맛을 골라 맛을 보더군요. 그리고는 자신이 맛본 여러 종류의 미뇽을 아주 큰 선물 박스로 포장 예약주문을 했어요.

그 손님이 나가고 저도 계산대 앞에 섰죠. “아침부터 미뇽을 저렇게 많이 먹는 사람은 처음 봐요. 진짜 여기 미뇽이 마음에 들었나 봐요.” 평소에도 미소가 가득한 마누엘라와 아주 생긋 웃으며 인사를 나누었지요.


며칠 후 다시 ‘수크레’를 찾았습니다. 역시 천천히 카푸치노 한 모금을 들이켰지요. 그때 수크레 주인 마누엘라가 어두운 표정으로 말을 걸어왔어요. “지난번에 왔을 때 그 미뇽 아주 큰 박스로 주문한 사람 기억나요?” “네, 파티는 잘했대요? 맛있었다고 인사를 하던가요?” “음……. 아니요. 안 나타났어요.” “네????”


마누엘라는 처음 보는 손님인데 통 크게 주문을 하길래 단골이 하나 늘겠구나 싶었대요. 그런데 예약 주문 당일에 전화도 받지 않고, 연락도 없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해요. 그 작은 미뇽을 주문받은 대로 하나하나 선물 케이스 안에 넣어 포장을 하고 기다렸을 텐데, 하루종일 주문한 손님과 연락마저 되지 않았을 때 심정이 어땠을까요?


몇 년 전부터 심심치 않게 접했던 노쇼(No Show) 관련 한국 뉴스가 떠올랐어요.


빵 100개와 음료수 50개를 주문해 놓고, 나타나지 않아 카페 사장님이 오열을 했다는 뉴스, 123만 원치 빵을 주문하고 나타나지 않아 결국 빵집 사장이 주문한 사람을 고소했지만 노쇼꾼이 오히려 적반하장이었다는 한국 기사 말이죠.


대체 왜 그런 일을 하는 걸까요? 어째서, 대체 무슨 이유로 힘들여 일하는 사람들 팔다리 힘 모두 쭉 풀리게 만드는 거죠?


한국에서도 이탈리아에서도 미소 가득한 얼굴에서 눈물 뽑는 노쇼……. 부디 반복되지 않았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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