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는 햇살 한 줄기 볼 일도 없는 날들이 많았더랬습니다. 그러다 운이 좋은 날 어쩌다 잠깐 햇살이 비치면, 대지는 순식간에 따스해집니다. 바람은 여전히 차갑지만요.
지난주 목요일은 단 하루 햇살이 밝게 비쳤어요. 덕분에 신나게 가위질을 했습니다. 정원 손질용 가위를 손에 쥐고 말이죠.
키만 멀뚱하니 빈약하게 자라던 체리 세이지 가지를 시원하게 잘라냈습니다. 작년 이맘때 소심하게 가지 끝만 살짝 잘라낸 탓인지 꽃이 풍성하지 않았거든요.
시원하게 잘라낸 가지에서도 기분 좋은 세이지 향이 났습니다. 긴 가지는 물꽂이를 하고, 끝부분 잔 가지는 삽목을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일요일인 오늘, 아침부터 굉장한 햇살이 내려왔습니다. 얼마나 귀한 햇살인데 늦잠을 잘 수가 있나요? 화장실도 가기 전에 후다닥 세탁기 버튼부터 눌렀습니다. 꾸물거리면서 샤워를 하고 진공청소기를 돌리며 집안을 느긋하게 산책하고는 전투적으로 정원일을 할 작업복을 입었습니다.
뜰이 있는 시골집에서 맞이한 첫 해엔 3월 초 부지런히 봄꽃을 심었습니다. 납작하니 엎드린 채 땅을 밝히는 프리물라가 좋아 열심히 심어댔습니다.
이듬해 돌아온 프리물라는 거의 없었지만요.
이듬해 2023년 1월 중순, 화원에서 자라 꽃봉오리가 맺힌 수선화를 조금 심었습니다. 너무 일찍 심은 탓에 꽃 위로 눈이 여러 번 내리기도 했어요.
온실에서 자라다 눈을 덮어썼쓰게 만들었으니 수선화에게 미안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눈 속의 수선화는 걱정과 달리 얼지도 않고 꽃을 잘도 피웠습니다. 그 후 다른 꽃보다 수선화를 좋아하게 되었네요.
수선화 꽃이 지고 수선화 알뿌리를 하나씩 나눴습니다. 고랑을 만들어 일자로 심는데, 앞집 할머니 카를라가 뭘 하냐 묻는데, “부자 되려구요!” 하고 웃었습니다.
그렇게 알감자처럼 심은 수선화 구근은 1월부터 천천히 뾰족하니 새싹을 올리고, 매년 이른 봄 어김없이 돌아와 꽃을 보여줍니다.
3월의 둘째 날 일요일, 햇살도 수선화도 거짓말처럼 돌아왔네요. 이곳 북서부 이탈리아 시골에도 봄이,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