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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까르보나라’는 어떻게 만들까?

까르보나라 데이 Carbonara Day, 야매 레시피

by 이지윤

4월 초가 가까워오자 너도나도 까르보나라 (Carbonara)이야기다. 응? 왜 갑자기 다들 까르보나라 타령이지?


알고 보니 4월 6일이 까르보나라 데이 (Carbonara Day)란다. 그런 데이도 있었나? 역시 역사가 길지는 않다.

2017년 4월 6일이 첫 까르보나라 데이였다고 하니.


까르보나라는 로마에나 가야 먹는 로마 전통 파스타가 아니었던가? 내가 사는 이탈리아 북서부 피에몬테 주에서는 집에서도 거의 해 먹지 않는 파스타다. 피에몬테에서는 물은 1그람도 넣지 않고 계란을 넣어 반죽한 부드러운 생파스타가 사랑받으니까.


그렇다고 언제나 계란을 듬뿍 넣고 반죽을 한 후 얇게 밀어 칼로 잘라내는 손 많이 가는 생파스타만 먹을 수 있나?


매년 화이트 트러플 세계 경매가 열리는 그린자네 카불 고성 (Castello di Grinzane Cavour) 안의 레스토랑에서 일할 때다. 손 많이 가고 값비싼 생파스타를 직원 식사로 매일 내놓을 수는 없었다. 역시 직원 식사로는 값싸고 간편한 건파스타 한 접시가 단골 메뉴였다.


시간이 정말 없을 땐 올리브 오일에 껍질을 벗기지 않은 통마늘 한쪽, 건조한 오레가노 꽃에 가끔은 앤쵸비도 좀 던져 넣고 향을 낸 후, 껍질을 까서 익힌 통조림 토마토를 도깨비 방망이로 윙윙 갈아 건조 파스타를 익혀 함께 소스로 먹었다.


푸질리에 토마토 소스 곁들인 어떤 보통 날의 직원 식사. 사진: 이지윤


언제였나? 알마(ALMA)에서 온 로마 출신 실습생 왈, 내일은 까르보나라를 해 먹잖다. 건파스타와 계란이야 레스토랑에 언제나 있으니 문제없고. 구안찰레(Guanciale)랑 뻬꼬리노 로마노(Pecorino Romano)는? 주말에 올라오셨던 부모님이 감사하게도 구안찰레와 뻬꼬리노를 가지고 오셨단다. 이런 횡제가? 그래! 까르보나라 한 번 해 먹자!


로마에서 올라온 구안찰레와 뻬꼬리노 로마노 치즈로 만든 오리지널 까르보나라였으니……. 그날 직원 식사용 스파게티를 얼마나 삶았는지 모르겠다. 그냥 더 던져 넣으라고 함성 주준으로 외치던 애들. 놀랍도록 왕성한 식욕이었다.




까르보나라를 만들 땐 무엇이 필요할까?

전통적인 로마의 까르보나라 레시피에서는 단 다섯 가지 재료만을 강조한다.

파스타, 계란, 구안찰레, 뻬꼬리노 로마노, 후추


그런데 한국에서 까르보나라를 만들어 먹는다면?

흠……. 이야기가 조금 달라지겠다.

재료 자체를 구하기가 어려우니 야매 까르보나라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 그러면 어떤가? 자, 야매 까르보나라 한 번 만들어 보자!


우선은 재료 체크!


파스타 Pasta

클래식은 클래식, 보통 까르보나라라 하면 얇고 긴 스파게티 Spaghetti 면이다. 요즘은 한국의 동네 마트에서도 스파게티 면은 쉽게 구할 수 있으니 난이도 오케이. 하지만 이탈리아에서도 구멍이 뚫린 원통 모양의 메짜 마니께, 리가토니 등의 짧은 파스타도 까르보나라를 만들 때 역시 사랑받는다.

파스타 양은 어떻게 계산할까? ‘나는 적게 먹는다’싶은 사람은 1인분에 75~80그람 정도, ‘나는 파스타 킬러다’ 하는 사람은 1인분에 100그람 이상 잡아도 좋다.


계란

계란은 노른자만 넣는 사람도 있고, 흰자도 함께 넣는 사람도 있다. 나는 질척한 게 싫어서 노른자만 넣는 것에 한 표.

1인분 파스타를 100그람 정도 평균으로 잡는다면 1 인분에 계란은 하나씩. 노른자만 권하는 내 레시피 대로라면 1인분에 노른자 하나가 되겠다.

계란 가격이 훌쩍 오른 미국의 경우도 아니니 이왕이면 신선하고 품질 좋은 유기농 계란을 고르자.


구안찰레 Guanciale

한국에서 쉽게 구안찰레를 구할 수 있을까? 구안찰레를 구해 보겠다고 백화점마다 돌며 수입 식재료 코너를 기웃거릴 수는 없는 노릇. 이탈리아에서는 구안찰레가 없을 땐 빤체따 pancetta로 많이 대체한다. 한국에서라면 얇게 잘른 베이컨도 차선책이 되겠다. 지방이 많이 나오는 돼지의 부위를 얇게 잘라 구운 후 바삭한 식감을 낼 수 있다면 대체가 가능하달까?


뻬꼬리노 로마노 Pecorino Romano

한국에서 뻬꼬리노 로마노 구하기? 흠……. 난이도가 높아진다. 뭐, 이탈리아 로마의 가정에서도 항상 뻬꼬리노 로마노를 갖춰놓고 있진 않으니.

그렇다면 차선책은? 짭짤하고 단단한 치즈라면 대체가 가능하다. 이탈리아 빠르미쟈노 parmiggiano 정도라면 오케이랄까? 그것도 어렵다면, 워쩔, 눈 딱 감고 미국식 파마산 가루 치즈도 오케이.


후추

까르보나라라면 후추는 흑후추를 사용하자. 콕콕 박힌 검은 점이 눈으로 보기도 이쁘니까.

한국에서라도 후추에서는 양보가 없다. 비싸거나 구하기 어려운 재료도 아니니까. 단! 제발 이미 공장에서 갈아 통에 담아낸 후춧가루는 쓰지 말자. 후추 그라인더가 없다면 차라리 통후추를 콩콩 두드려 부순 후 사용하면 좋다.

큰 입자로 막 갈아내거나 부순 후추 향은 킥 중의 킥이다.


재료 준비 오케이. 자! 이제 야매 까르보나라 만들러 갑시다!


깊은 냄비에 스파게티 긴 면이 잠기게 물을 넉넉하게 넣고 물이 끓기 시작할 때 굵은소금도 인심 좋게 넣어준다. 밍밍한 물에 익힌 파스타만큼 맛이 없는 것이 또 있을까? 의심이 되면 한 숟갈 소금물 맛을 보는 게 좋다.


센 불에 달구어진 팬에 구안찰레(판체따, 베이컨 등등 구할 수 있었던 지방이 많은 돼지의 얇은 부위)를 넣는다. 기름은 넣지 않는다. 어차피 구안찰레에서 기름이 나올 거니까. 구안찰레가 눅눅하지 않고 바삭해질 때까지 굽는다. 높은 온도 때문에 연기가 많이 날 수 있다. 당황하지 말자. 원래 그러니까.

온 집안이 돼지기름 냄새 범벅이 되는 게 싫다면 기름종이를 깔고 오븐에서 굽거나 에어프라이어를 사용하는 것도 좋다. 관건은 바삭한 구안찰레를 만드는 거니까. 바삭하게 구워진 후에는 구안찰레를 바로 기름에서 건져둔다.


이쯤 되면 이미 파스타 삶을 소금물은 벌벌 끓고 있겠다.

소금물 간이 맞고 물이 팔팔 끓을 때 원하는 양의 파스타를 넣는다. 1인분에 100그람 정도가 평균이다. 소식가라면 75그람, 대식가라면 150그람.

파스타 조리 시간을 보다 3분 정도는 미리 건지는 게 보통이다. 소스팬 안에서 다시 덖을 시간이 필요하니까.

단! 우리는 까르보나라를 만드는 중! 스파게티 한 줄을 이로 깨물어 원하는 익힘 정도에 가까워졌다고 생각할 때 바로 건지자. 우리는 다시 불 위에 파스타를 올리지 않을 거니까.


응? 그럼 파스타 소스는?

소스랄 것도 없다. 아주 간단하니까. 파스타가 익는 동안 소스를 준비하자. 커다란 볼에 날계란 노른자를 넣고 뻬꼬리노 치즈를 갈아 넣는다. 치즈가 얼마나 짠 지에 따라 입맛이 달라지겠지만, 1인분 당 50그람 정도 넣고, 맛을 보고 부족하다 싶으면 나중에 더 갈아 넣으면 된다. 팡팡 두드려 따로 갈무리해 둔 막 부순 흑후추도 넣는다.

자, 이제 숟가락이나 포크나 휘핑기로 잘 저어 노른자와 치즈 가루, 막 부순 후추가 잘 섞이게 하자. 진했던 노른자 색이 공기와 섞이면서 점점 색이 옅어지면 오케이. 잘 저을 수록 소스가 더 부드러워진다.


어? 이제 파스타의 익힘 정도가 마음에 드는 듯?

자! 이제 필요한 건 뭐? 스피드다. 재빨리 뜨거운 파스타 면을 건져 준비해 둔 노른자 치즈 후추 소스에 넣는다.

양손으로 커다란 포크를 쥐고 파스타와 소스를 마구 섞어주자. 뜨거운 스파게티 면과 그 면에 붙어 있던 뜨거운 소금물이 알아서 날계란을 적당한 온도로 익혀 부드러운 크림 소스 느낌이 난다. 그러니 괴식 처럼 크림을 넣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뜨거울 때 접시 위에 담고 고명으로 파삭한 구운 구안찰레를 올려주면 완성! 맛을 본 후 원하면 치즈 가루를 더 올려주자.


입맛에 맞게 더 야매로 만들고 싶은 당신이라면?

1954년 <La Cucina Italiana>에 공식적으로 실렸던 까르보나라 레시피, 지금은 전 세계에 400개가 넘는 변형 레시피가 있다고 하니, 죄책감은 갖지 말자.

입맛에 따라 팬 위에 구안찰레를 구울 때 나온 기름에 껍질을 벗기지 않은 통마늘 한 조각과 뻬뻬론치노(없으면 입자가 굵은 고춧가루)를 넣으면 한국인 입맛에 잘 맞을 듯하다.

‘그래도 내겐 좀 느끼할 듯’싶은 사람이라면 위에 실파를 쫑쫑 잘라 올리고 신선한 레몬즙을 살짝 뿌려도 좋다.

계란과 치즈는 먹되 고기는 먹지 않는 채식주의자라면 파삭한 구안찰레의 식감을 얇게 잘라 튀기듯 바삭하게 익힌 양파로 살려도 좋을 것이다.



2025년 4월 6일 까르보나라 데이 Carbonara Day, 한국에서도 까르보나라를 즐길 수 있는 법을 정리해 보았어요. 입맛에 따라 변형된 레시피야 많으니 마늘, 양파, 뻬뻬론치노까지는 애교가 아닐까요? 미국식 변형처럼 제발 크림만은 넣지 말아 주세요.


예전에 찍어둔 까르보나라 먹방 사진을 찾기가 어렵군요. 표지 사진 출처는 lacucinaitalia.it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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